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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Feb 25. 2021

허전한 생일파티에서 꽉 찬 생일파티로

 이른 아침 절친이 잠을 깨웠다. 울리는 톡 소리를 보니 아침 여섯 시다. 이 시간엔 잠 없는 내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친구 수영이가 1순위로 생일  축하카드와 함께 커피 쿠폰을 보내왔다.

 '계집애 성격도 급하지...' 좀 쭘하면서도 내심 내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친구가 고마웠다. 해마다 돌아오는 것이 생일인데도 말은 생일 별거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일 년 중 그날만은 나 스스로를 귀하게 대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축하인사도 듬뿍 받고 싶은 것이 내 솔직한 속내이다. 한 살 더 먹는 것은 좀 우울한 일이지만 아침부터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친구 덕에 일찍 잠이 깼지만 더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아서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갔다. 먹을 거라고는 전날 사다 놓은 식빵이 전부다. 혼자 지내고부터 점점 끼니 챙기는 게 꽤가 나고 귀찮아 대강 해 먹는 것이 익숙한 나이지만 오늘은 그래도 왠지 미역국에 고슬고슬한 밥 정도는 먹어 주어야 할 것 같아 잠시 머뭇거렸지만 왠지 청승맞아지는 것 같아 그냥 평소 하는 대로 토스트에 과일 한쪽으로 끼니를 때웠다.



 동생네 현관으로 들어섰다. 동생, 조카들이 반갑게 나를 반기고는 각자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엥 내가 상상한 분위기가 아니다. 적어도 동생은 오늘은 언니인 내 생일임을 알고 축하한다고 한 멘트 날려줘야 하는데... 하긴 지 생일도 잊고 사는데 바랄 것을 바라야지...

 "이모 축하해줘~~"작은 조카에게 말을 하니 다들 축하한다며 미안해한다. 작은 녀석이 다가와 나를 안아주며 "이모 생신 축하해요!" 하고는 제방으로 사라지더니 잠시 후에 등 뒤에 무언가 감추고 나타나더니 내게 손을 내밀라 한다.

 "와, 늑대네! 이거 정말 주는 거야?"조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혼자 책을 보고 취미생활로 시작한 종이접기는 14세 소년이 되어서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최근에 접은 '늑대'인데 종이접기 카페에도 올린 작품으로 조카가 귀하게 여기는 것이었으니 어린 마음이 기특해 조카 볼에 내 볼을 비비고 엉덩이를 토닥여주었다.

 큰 녀석은 평소 내게 존댓말 대신 허물없이 반말을 사용하는데 생일 인사는 깍듯이 존댓말로 "이모 생신 축하드려요." 하는 바람에 나를 웃게 만들었다.



 점심으로 동생이 한턱내는 초밥을 생일상으로 네 식구가 마주 앉아 맛있게 먹고 아이들이 불러주는 생일 노래를 부르며 케이크 위의 촛불을 껐다.

 집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니 오후 5시다. 일찍 일어난 탓인지 머리가 아파서 잠시 자리에 누웠다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방안에 어둠이 내렸다. 마침 휴대폰 벨이 울린다. 미경 씨한테서 생일 축하 전화가 왔다. 선물로 아들 오면 먹으라고 케이크까지 선물로 보내줬다.

 오늘 하루 종일 지인들의 많은 축하를 받으면서도 마음이 뭔가 허전했던 것이 이제야 또렷하고 분명해진다. 매년 엄마 생일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는 아들이기는 하지만 요즘 부쩍 예전과 다르게 무심한 모습을 많이 보여 나를 섭섭하게 했다.

 그래도 아들이 요즘 장래 문제로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안쓰럽게 여겼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혼자 사는 엄마 1년에 한 번뿐인 생일 밥같이 먹어주라~"하고 평소 쿨한 내 스타일과는 다르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해봤는데 일이 있다고 해서 포기했었다.

 그냥 요즘 아들이 이직하면서 일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을 거라고 이해했는데 정작  내 생일날 자식이라고는 달랑 하나뿐인데 기억 못 한다 생각하니 섭섭함이 밀려왔다.

 그게 오전만 해도 바빠서 전화 못하고 있겠지 생각하다 시간이 갈수록 얘가 무슨 일이 있나 이럴 애가 아닌데 걱정이 들다가도 자식 참 무심하다로 마음이 수시로 바뀌는 것이다.



 카톡, 카톡 열심히 울려댄다. 김집사님이 나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 놓으셨다고 내일 전해주신다 하신다. 맛있는 점심까지 사주신다고 미경 씨도 같이 보기로 했다. 나라는 사람이 뭔데 넘치는 사랑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도 참 고맙고 미안한데 가장 축하받고 싶은 사람의 축하가 빠지니 허전하고 맥이 빠진다. 시간을 보니 밤 10시다. 궁금한 마음 반, 걱정스러운 마음 반으로 연락을 했다.

 그 시간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은 아니나 다를까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머릿속은 얼마나 바쁘면 잊어버릴까 하면서도 1년에 한 번뿐인 혼자 있는 엄마 생일을 지나치는 무심함에 서운했다. 게다가 농담이라고 내게 투척한 말이 마루(키우는 개) 생일도 기억 못 한다는 말을 했으니 하루 종일 목 빼고 아들 기다렸던 나의 상처 난 마음에 소금을 뿌렸다.

 화가 날대로 난 나는 평소 우아함도 접어두고 짧고 굵게 "나쁜 놈"으로 마무리하고 끊어 버렸다. 엄마란  항상 자식을 품고 다독여야 하지만 오늘만은 사표를 내고 싶게 약이 올랐다. 씩씩거리다가 잠이 들었고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부스스하니 꼴이 말이 아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1시간 20분은 잡아야 하고 잠은 설쳤는지 머리는 아프고 내리 잠만 자고 싶은데... 정성껏 미역국을 끓이셨을 김집사님 얼굴이 아른거려 얼른 씻고 준비했다.

 생일날 아들과 다툰 일로(엄밀히 말해서는 내가 성질을 먼저 내고 걔는 아무 말도 안 함. 그것이 나를 더 화나게 함.)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지인들과 봄볕 쬐며 야외로 드라이브하니 집에만 갇혀 살던 나도 모처럼 기분이 업되는 게 느껴지고 잠시나마 어제 일을 잊을 수 있었다.

 깔끔하고 정갈한 한정식을 눈과 미각으로 즐기고 주변의 경관을 보니 봄이 성큼 다가와있다. 생각 안 하려 했는데 맛난 거 먹는데 아들 생각이 잠시 났으나 고개를 저었다. 나 뒤끝 있는 여자이다.



 퇴근 무렵 지하철 안이라 사람들로 붐빈다. 그래도 다행히 갈아타고서는 바로 운 좋게도 앞자리에 자리가 나서 자리를 잡았다. 오자마자 미역국을 데워 집사님을 생각하며 한 그릇 먹었다. 이제 비로소 한 살 더 먹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해도 아들내미랑 쌈박질이랑 하고 철딱서니가 없다.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마음을 풀어 줘야지 생각하고 휴대폰을 집어 드는데 메시지가 뜬다. 아들로부터 약간의 현금이 '사랑해요'라는 멘트와 함께 내 계좌로 들어왔다.

 갑자기 눈물이 핑돌고 가슴이 아팠다. 바로 장문의 톡을 보냈다.

 "아들 엄마가 어제 너무 예민했어.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줘도 네 축하가 가장 받고 싶었나 봐. 속이 좁게 굴어서 미안. 보내준 용돈은 네 보험료로 쓰고 남은 것은 엄마 꼭 필요한 걸로 요긴하게 쓸게.

사랑해... "



 사랑은 느끼는 것, 말하지 안 해도 알 수 있는 거 절대 노노. 그건 점점 오해만 쌓일 뿐이다. 충분히 관심을 갖고 상대에게 애정을 충분히 표현해 주는 관계가 더 건강하고 오해의 여지도 없다.

 괜히 내 마음이 이러니 너도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하고 생각하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상대는 모를 뿐만 아니라 점점 오해만 커갈 수 있다.

 나야 부모 자식 간이니 더 믿는 마음으로 이 정도는 알아주겠지 한 거였는데 부모 자식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언어였다.


 평소 같으면 한, 두 마디면 통화 끝인데 아들 녀석은 어제 일이 미안한지 피곤할 텐데 이런저런 이야기로 다정하게 말을 부친다. 난 피곤한 아들이 신경 쓰인다. 얼른 자~ 나중에 쉬는 날 연락하고 잘 자라 사랑해~~

 엄마 사랑해요~~

 어느새 잊지 못할 생파 1,2부의 막이 내렸다. 자고 나면 봄기운이 더욱 짙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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