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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24. 2021

새봄 맞이 다이어트.

 겨울 옷을 정리하고 봄에 입을 옷들을 정리했다. 겨우내 알게 모르게 찐 살이 상의는 그런대로 아직 여유가 있는데 하의는 전부 타이트하게 단추가 잠겨져 나를 꿀꿀하게 만들었다. 아까운 옷들을 버릴 수 없어 수선을 맡기려 몇 벌을 추려 놓았다. 소식하는 편이지만 동절기에 거의 움직임 없이- 동면해 있어서 복부에 두둑이 지방이 쌓였다. 갱년기에도 나름 체중조절에 성공해서 지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는데 올 겨울 혹독한 추위에 일할 때 빼고는 집콕했으니 그 여파가 자연스레 체중의 증가로 이어졌다.

 

 올 겨울은 지독히 추워서 뚜벅이인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겨울 외투 중 가장 따뜻한 롱 패딩만 교복처럼 입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고 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는 봄이 오니 아줌마도 여자인지라 설레고- 예쁘게 단장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든다. 휴~ 언감생심 새 옷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즐겨 입던 옷들이 올봄에도-날렵하게-잘 맞기만을 바랬는데 거울을 보니 옷 태가 안 나니 속상했다.

 처음엔 옷을 고쳐 입지 말고 옷에 내 몸을 맞춰야지   비장하게 각오를 하고, 몸을 부지런히 놀리고,  식사량도 조절하며 전의를 불태웠지만 시간이 흘러도 늘어난 체중은 줄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도니 점점 자신감은 사라지고 슬며시 늘어난 허리살에 맞게 옷을 고쳐 입기로 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다이어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한다면 하는 여자이다.



 봄을 여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 말의 속 뜻은 정확히는 알 수 없어도 봄에 산에 들에 피는 꽃들의 축제를 보면 나 같은 집순이조차도 그 고운 자태에 홀려 집 밖으로 나가기 일쑤니-봄은 여인들로  하여금 꽃단장하고 꽃구경하기 좋은 계절이다. 한겨울 동안 무겁고 칙칙했던 외투도 벗고 가볍고 산뜻한 옷차림으로 멋을 낼 수도 있으니 이래 저래 봄은 여인들의 기다리던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오늘은 어제와는 달리 바람이 살랑살랑 분다. 어제는 계절을 착각할 만큼 세찬 바람이 불었는데 하루새 봄기운이 무르익는다. 이 변덕스러움조차 여자의 마음, 나의 마음을 닮은 봄은 분명 여자의 계절이 맞다.


 나의 생활 반경을 벗어나 다른 동네의 수선집으로 향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바느질 솜씨가 좋은 사장님이라고 동생이 소개해줬다. 버스로 세 정거장인데 운동삼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짧은 세 정거장이라 힘은 안 드는데 들고 가는 짐들이 많아 조금 힘들었지만 도로변 담장 위로 노란 개나리가 활짝 피어 나를 반긴다. 가는 길 곳곳에 수줍은 목련도 눈인사를 한다.

 도착하자마자 가을만 해도 매끄럽게 잠겨지던 바지를 하나, 둘 입어 본다. 그 몇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사이즈는 정확히 1인치가 늘었다. 눈에 띄는 증가세니 마음속으로 겨울 내내   움직이지 않으면서 먹는 양을 줄이지 않았던 나를 원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거의 뛰다시피 세 정거장을 걷다 보니 숨이 턱밑까지 차 올랐다.  숨이 차게 걸으며 무너진 허리선과 손에 잡히는 옆구리 살을 떠올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내가 좋아하는 앙버터 빵과  버터 프리첼을 파는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오늘은 눈을 질끈 감고 집으로 직행하였다. 달콤한 팥과 버터의 풍미가 느껴지는 빵인데 한 번 먹어보면 자꾸 입에서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어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 생각만 해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고 행복해지는 것들이지만 용케 잘 참고 빵집을 지나쳤다.

 그러고 보니 내 군살들이 빵빵하게 물이 오른 결정적 이유가 끼니 대신 종종 먹던 빵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과감히 끊을 자신이 없다. '덜 먹고 더 많이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백 밀로 만든 빵 대신 통곡물로 만든 빵은 괜찮지 않을까? 에이 매일 먹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두 번이니 괜찮겠지... ' 이렇게 빵순이의 고민은 시작되었고 수선집에서의 다이어트를 향한 결연한  의지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와서 물부터 벌컥벌컥 들이켠다. 겨울용 외투가 땀에 젖었다. 일부러 운동삼아 돌고 돌아 집으로 왔다. 꼬르륵하고 허기진 배가 밥을 달라고 하는데 테이블 위에 피자가 보인다. 정제된 밀가루 노노라고 외치던 아까와는 달리 배고픔에 이성을 잃고 피자 두 조각을 달게 먹는다. 운동 후 피자 흡입. 나른하고 졸린 오후이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점심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으니 속도 더부룩하고 다이어트 결심 반나절도 못가 느슨해진 나에게 화가 나기도 어이가 없기도 해서 맥이 빠진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없다. 한 번 뽑은 칼 무라도 베어야지 하며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좀 피곤하지만 운동도 하고 봄이 내린 동네 풍경도 즐길 겸 집을 나선다. 아침보다 한결 대기가 포근하다. 산책로를 따라 길을 걷는다. 지나가는 여인들의 옷차림이 한결 가볍다. 그러고 보니 나만 겨울 옷차림이다. 건너편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맵시 있게 입고 걸어가는 여인이 보인다. 매일 어두운 옷만 입고 다니는 나도 봄에는 좀 화사한 옷으로 갈아 입고 나들이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걷다 보니 동네 작은 옷가게가 보인다. 쇼윈도 안의 멋있게 디스플레이된 옷들을 잠시 넋을 놓고 들여다본다. 블랙을 고집하는 나도 늙나 보다. 파스텔 톤의 밝고 환한 봄 점퍼와 화사한 스카프가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외출할 때도 없지만 오랜만에 지름신이 납시는 것 같아 고개를 젓는다.



 유리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가게 사장님밖에 없는 안으로 들어가기 좀 뻘쭘 히지만 용기를 내어 들어갔다. 내부는 작지만 사장님이 눈썰미가 있는 것 같다. 제법 옷들이 세련되고 깔끔하다. 그런데 한 가지 결정적인 흠이 보인다.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들은 언뜻 보기에도 사이즈가 하나 같이 작아 보인다. 우선 가격을 물어보니 예상한 가격보다 좀 많이 비싸다. 입어 보려다 말고 돌아서 나오며 다시 한번 눈에 담아둔다.

 겨울을 지나기 전 내 사이즈였다면 충분히 맞았을 텐데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맞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느껴졌다. 잘 맞았으면 무리를 해서 질러 버렸을 것 같다. 가벼운 주머니 생각을 하니 풀이 죽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씩씩한 나로 돌아왔다.

 옷장의 옷들을 살펴본다. 하나같이 무채색 계열이지만 옷 관리를 잘해서 그런대로 새 옷처럼 깔끔하다. 이 봄날에 어울릴 만한 외투를 입고 화사한 스카프를 목에 두른다. 거울을 보니 그런대로 아직 봐줄 만하다. "그래  여기서 더 이상 찌지 말자. 이 정도면 내 나이치고 양호하지. 너무 마르면 더 늙어 보여. 건강에만 이상 없으면 이 정도 살집이야 보기 좋지..." 하고 중얼대며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모든 생활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균형을 잡기가 참 힘들다. 어디 체중만의 문제인가. 우리 삶에서 부족한 부분은 잘 조절해 살찌우고, 넘쳐서 삐져나온 삶의 군살들은 슬림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사는 동안에는 꾸준한 다이어트가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 창고에 오래되고 낡은 짐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있다. 묵은 짐들을 -원망과 불평, 게으름 등-정리하고 쓸만한 것들은 가지런히 놓아 본다. 한결 여유 있는 공간 덕에 사랑과 감사와 온유함을 다시 채운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얼마 전에도 한차례 봄맞이 대청소를 했는데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묵은 먼지들  때문에 한참을 씨름했다. 땀을 흘리고 나에게 맞는 적정량의 건강한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적당한 포만감에 행복해진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니 다이어트에 대한 부담감이 저절로 사라진다.

 엊그제 수선한 바지로 갈아입고 겨울 외투 대신 트렌치코트를 걸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카프 중 가장 화사하고 고운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친구 카페로 마실을 간다.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지고 여기저기 봄꽃들이 아는 체 인사를 한다. 나도 빙그레 웃으며 눈을 맞춘다.

 

 점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날아갈 듯 맵시 있게 걷는다. 멋쟁이 아줌마의 하루가 잘 여물어 간다.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구호를 외친다. 아자 아자 파이팅! 내일도 모레도 다이어트는 계속된다. 쭈~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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