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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23. 2021

삶 그 쓸쓸함에 대해서...

 내 생활은 참 단조롭다. 눈을 뜨면 아침을 먹고 가방을 챙겨 오전에는-친구 카페에 가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고 오후엔 매일은 아니지만 정해진 요일엔 동생네 가서 아이들의 식사 준비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마트에 아르바이트 나가는 것 빼고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특별히 동네를 벗어난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코로나로 친구들을 만나러 북적대는 시내에 나가기도 주저하게 되고 워낙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다 보니 그런대로 혼자서 노는 것이 편하고 몸에 잘 맞는다.

 그렇다고 아주 폐쇄적인 사람은 아니다. 친구들과 대면활동만 안 할 뿐 전화로 종종 세상사는 일들과 나의 요즘 고민과 어려움들 털어놓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냥 실없는 농담으로 깔깔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진지한 사람에 가깝다.

 

 오늘도 어제 지인이랑 밤에 톡을 주고받다 바람 쐬러 가자고 -만나자고- 하는 제안을 거절했다. 만나면 반갑고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되기도 하지만 어제, 오늘 좀 마음이 가라앉고 우울한 것이 그냥 혼자 있고 싶었다. 지친 마음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살피고 다독여 주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조금은 외롭지만 누구든지 마찬가지 일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마음이 울적한 것은 울적한 것이고 내가 정한 글을 쓰기 위한 원칙들은 지키고 싶었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자리에서 떨치고 일어나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명희 씨 카페에 도착하니 오늘도 내가 첫 손님이다. 늘 앉는 자리에 앉아 첫 문장을 써 내려간다. 잠시 고개를 들어 창밖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엊그제 내린 비로 정원은 더욱 파릇한 봄빛을 띤다. 엉클어진 내 마음을 푸릇한 봄빛이 다독여 준다. 눈가가 촉촉해진다.

 시간은 흐르고 휴대폰 벨이 울린다. 김집사님이다. 혼자 있는 나를 위해 직접 반찬을 만들어서 신집사님과 오신다고 한다. 유난히 정이 많으신 분들이다. 감사한 마음과 그래도 혼자 있고 싶다는 마음이 복잡하게 얽힌다.

 첫 문단은 자연스레 흘러갔는데 둘째 문단에서 매끄럽지 않다. 가만히 커피를 마시며 생각을 정리해 본다. 오늘따라 글에 집중이 안되고 생각이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머리도 휴식이 필요한 하루인가 보다.

 며칠 포근한 봄날이 지속된다 싶었는데, 어제와 오늘은 찬바람도 많이 분다. 꽃을 시샘하는 추위지만 이미 성큼 다가 온 봄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킬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참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무렵 멀리 분당에서 두 분이 내가 있는 카페 근처로 와 전화를 주셨다. 가까이에 있는-친구가 소개해 준 -맛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국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답게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정갈하고 소담스럽게 차려진 밑반찬도 깔끔하고 가격 또한 적당해 만족스러웠다.

 식사를 마치고 김집사님이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명희 씨 카페에서 차를 드시고 싶다 하셔서 다시 카페로 갔다. 아담하고 소박한 그리고 창이 넓은 카페에 오랜만에 세 여인이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상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창밖에 바람에 쉴 새 없이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잎들을 보며 우리의 인생도 수 없이 흔들리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외로움이라면 이골이 난 나이지만 요 며칠은 하루의 일과가 다 끝나고- 어둠이 깊숙이 내린- 자정을 앞둔 무렵에는 알 수 없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밀려왔다. 뭐랄까 그동안은 의식적으로 내 몸과 정신을 일상의 분주함으로 잘 제어해왔는데... 갑자기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었고 고장 난 제어장치 사이로 꾹꾹 눌러 왔던 허무와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이 물 밀듯 밀려왔다. 내가 외딴섬처럼 느껴졌다.



 우두커니 멍하니 앉아 나를 들여다본다. 사람들 속의 내가 낯설다. 이상하다. 한낮 내가 그리던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도 어젯밤 내가 느낀 고독감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아니 더 외롭다.  그냥 혼자 있을 것을... 잠시 후회를 했다.

 나의 마음속 파문을 눈치 채신 걸까 김집사님이 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가자고 하신다. 나를 보러 달려오신 두 분에게 미안해 혼자만의 상념에서 빠져나오려 밖으로 따라나섰다. 

 바람은 세차게 불지만 햇살은 따스하다. 잠시 이 계절은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혼돈의 계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와 닮아있었다.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지나갈 것이라고, 지나갈 것이라고 내게 주문을 건다.


 얼마쯤 달렸을까. 달리는 차창 너머 푸른 강이 보인다.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이 오늘은 동적인 바다와 흡사하다. 햇빛에 반짝이는 물빛이 살아 펄떡인다. 그 생명력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먹먹했던 가슴에 물이 차오른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숨이 막힐듯한-아름다운 강물이 나를 위로한다. 외롭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쓸쓸한 내 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불을 끄고 창밖을 바라본다. 깊은 밤 도시의 불빛들이 오늘은 무수한 별빛처럼 느껴진다. 저 많은 별들 속의 주인공들도 나와 같은 여행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가족도 잠시 여행길에 만나는 동행자일 뿐. 결국은 스스로의 삶의 무게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야 한다. 그래서 때로는 무리 속에 있으면서도 지독히 외롭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삶은 쓸쓸하고 외롭다. 이런 자연스러운 감정을 나는 한동안 통제하려 했다. 아주 오랜만에 찾은 마음이 평정심이 혹여나 어두운 감정들에 의해 다시 잠식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었다. 이 어두운 감정들이 있기에 밝은 감정들이 빛을 발하는 것은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모든 감정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는 사실을- 봄빛에 젖어 일렁이던- 푸른 강가에서 깨달았다. 겨울의 강빛과 봄의 강빛이 달라도 여전히 강은 강이었다.


 밝음만 존재한다면 그 밝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둠이 존재함으로 빛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나란 존재의 성찰이 이루어졌다.

 지나간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외로움과 쓸쓸함은 나를 나답게 하는 언어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그것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었고 나를 충만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오늘 이 시간 나는 여전히 혼자다. 삶의 평균값은 기쁨보다는 슬픔과 우울에 가깝다. 외로움과 쓸쓸함은  그들의 단짝 친구이다. 앞으로 남은 삶이 지금의 삶보다 덜 고독하거나 덜 쓸쓸할 거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것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리라는 사실이다.

 글을 쓴다는 것도 살아가는 일도 고독한 여정이다. 설령 내가 원하고, 꿈꾸는 작가가 되지 못한다 해도 진실한 인생의 반쪽을-글을 쓰는 일-만났으니 좀 쓸쓸하면 어떠한가. 어차피 나 이외의 모두는 진정한 타인이거늘...

 밤은 더 차오르고- 하나, 둘 별빛이 스러져간다. 고요하고 적막한 밤 속으로 외로움도 잠이 든다. 그 옆에서 나도 잠이 든다. 쓸쓸히 달빛만 홀로 밤을 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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