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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쁜손 Mar 26. 2021

축제

 벚꽃 봉우리 진 것이 톡톡 터진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지은 지 40년이 다 돼가는 오래된 아파트다. 단지 내 벚꽃 나무들도 아파트와 같이 40년이 다 돼가는 고목들이다. 해마다 이 맘 때면 벚꽃들이 개화하여 장관을 이룬다. 이웃 인근의 다른 동네에서까지 우리 동네 벚꽃을 보러 올 정도니 굳이 따로 벚꽃 구경을 가지 않아도 된다. 올해는 3월 평균 기온도 예년보다 높고 일조량도 풍부해서 그런지 양지바른 쪽의 벚꽃은 벌써 하나, 둘 수줍은 듯 제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마다 3월 말에서 4월 초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만개할 시기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곤 했다. 올 해도 이 맘 때가 되니 자연스레 -흐드러지게 피어 몽환의 풍경을 만드는 벚꽃들의 군무가 -기대된다.

 

 어젯밤 요양원에 계신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드시고 싶은 음식이 있으신데 에둘러 말씀하신다. 흉허물 없는 자식, 부모 사이라도 부모는 자식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어려운 모양이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은 없고 싫어하는 음식들만 있는 줄 알았다. 내가 철이 들고 보니 당신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시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신 거였다.

 아침 일찍 서둘러 장을 보러 나왔다. 일품요리는 그런대로  내는데, 엄마가 드시고 싶은 고향의 맛이나 손맛을 필요로 하는 옛 음식들은 자신이 없다.

 부족한 대로 엄마가 잘 드셨던 음식을 떠올려 보고 그에 맞춰 재료를 준비해 오늘 중으로 전달해 드려야겠다. 마음이 급하다. 동네 단골 정육점에서 불고기용을 장만하고 생선가게와 야채가게에서 갈치와 무를 샀다. 과일은 딸기를 샀다. 엄마가 요양원 입소하시고 딸기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나는 참 무심한 딸이다.



 8년 전 나는 친정으로 회귀하였다. 동네는 낯설고 마음은 너덜너덜했지만 나의 괴로움을 아시는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반기셨다. 그 침묵이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때는 벚꽃이 막 지기 시작한 봄날이었다. 그 후 매년 봄꽃이 피는 봄에는 엄마와 벚꽃이 만개한 길을 꽃비를 맞으며 걸었다.

 마음이 바쁘다. 엄마의 식사시간에 맞춰 갖다 드리고 싶어 부지런히 재료를 손질해서 조리를 한다. 참 냉장고에 엄마가 드시고 싶다는 간장에 절인 고추 조림도 일회용 용기에 잊지 않고 담아둔다. 주섬주섬 짐을 꾸린다. 내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좋아하실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기쁘면서도 슬픔 감정이 고개를 든다. 마음이 복잡하다.

 엄마와 함께한 마지막 꽃구경이 벌써 2년이 되었다. 세월이 빠르다. 엄마와의 그 해의 벚꽃구경이 마지막이 될 줄은 그날엔 미처 몰랐다. 어느새 벚꽃은 점점 차오르는데 그 아름다움을 오롯이 만끽할 수 없다. 마음 한편이 슬픔으로 일렁인다.

 엄마의 건강을 생각해 간은 좀 심심하게 했다. 완성된 불고기를 반찬통에 담고 갈치 무조림에 갈치는 가시가 없게 잘 발라 드시기 좋게 담는다. 마지막으로 딸기는 흐르는 물에 잘 닦아서 같은 룸메이트 할머니들과 나눠 드시게 넉넉히 담았다. 메모지에 적은 준비해야 할 목록을 일일이 체크한 뒤 가방을 쌌다.



 담장에 핀 개나리와 막 피기 시작한 벚꽃과 팝콘처럼 한껏 부풀어 오른 목련이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향해 손짓을 한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가진-살아있음에 감사하다. 뺨을 간지럽히고 정성스레 내 머리를 쓰다듬는 훈풍이 분다. 엄마가 보내준 바람일까. 나의 허전한 마음을 살피고 토닥인다. 떨어져 지내는 아들에 대한 사랑도 바람에 묻어 아들에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버스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걷는다. 엄마의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려 부지런히 달려왔다. 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 있어 다행이다. 아직 요양원 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아 대신 직원에게 가져간 음식을 건네며 점심시간 전에 전해드릴 것을 부탁했다.  딸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딸의 손맛에서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느끼실 수 있기를 바라며 떨이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삼 남매 중 부모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결혼해서 제대로 잘 사는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부모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아버지는 눈을 감으시기 전까지 내 걱정으로 편히 잠드시질 못했다.  이혼 후 친정으로 들어간 것은 그나마 다행인지 아버지 돌아가시고 몇 년 후의 일이다. 아버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봄에 돌아가셨다. 봄이 깊어가니 아버지가 그립고 엄마와의 꽃 미실 가던 그때가 몹시 그립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 그 당시에는 별 의미 없었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빛바랜 기억 속에 적당히 윤색되어 아름답게 떠오른다. 상처로 얼룩져 패잔병으로 돌아온 날에 봄 꽃들은 내게 아름다운 축제가 아니라 잔혹함 그 자체였는데 이제 여기서 돌아보니 눈물이 핑 돌게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아, 지금 이 거리에, 이 공간에서 내가 만끽하는 봄날도 어느 날에 돌아보면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남겠지...

 소중한 그리움들이 켜켜이 쌓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내일의 내가 되는 것일 것이다. 어제의 상처도 아픔도 이제는 내 삶 속 내 몸 깊은 곳에 녹아   지금의 단단한 나를 이룬다. 그것들조차 이제는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나는 어찌 보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와 우두커니 한참을 앉아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있지만 애써 밝게 씩씩하게 전화를 는 아들이 안쓰럽다. 옆에 있으면 꼬옥 앉아주고 등을 두드려 주었을 텐데. 그 마음을 담아 사랑한다고 한다. 전화기 너머 아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사랑해요. 엄마~ 저녁 잘 챙겨 드세요~ "하고 내게 당부를 한다.



 하루 밤사이 벚꽃들이 온 마을을 수놓았다. 꽃들이 춤추며 말을 한다.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태가 고혹적이다. 이상하게  아름다움의 절정에는 애잔한 슬픔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 슬픔은 나를 침잠하게 하지 않고 나를 정화시킨다. 비록 이 해에 다시 돌아온 봄의 축제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는 찰나의 시간이겠지만 나의 삶에서는 오랫동안 각인될 그리움의 시작이다.

 오래도록 이 축제의 현장을 눈에 담아두려 천천히 걷는다. 엄마 손에 이끌려 꽃길을 걷는 아이들이 보인다. 꽃마중 나온 상기된 여인들이 벚꽃 아래서 맑은 웃음을 터트린다. 슬픔과 절망의 시기가 있었기에 아름다움을 아름다움 그 자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은 축복이고 축제의 무대였다.


 명희 씨와 일찍부터 개화한 창밖의 꽃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젊었을 때는 나 자신이 빛나는 꽃이었기에 미처 몰랐던 살아 있는 생명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이제 우리는 아쉬움으로 바라보며 눈으로 가 아닌 가슴으로 새긴다.

 흐르는 시간이 있어서 오늘의 축제도 올 해는 곧 막을 내리겠지만 황홀했던 아름다운 추억은 내 안에 속속들이 남아 다시 모진 추위와 절망의 겨울이 와도 견뎌낼 힘을 줄 것이다.


 두 여인이 커피 향 진한 카페에서 꿈꾸듯 하늘과 벚꽃들을 바라본다. 스치듯 지날 어느 짧은 봄날에 걸어온 삶을 추억하며 오늘도 축제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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