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 김수현
2022년 1월 27일 오후. 사무실의 막내가 꽈배기가 잔뜩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환한 웃음으로 말한다.
"여기요~꽈배기 드세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출출함을 달래줄 거리에 반가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용돈 좀 벌었어요. 주식으로요. "
몇몇은 무슨 소리인가 하며 고개를 갸웃하지만, 몇몇은 고개를 끄덕인다.
주식을 하는 친구들은 그날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 날이다.
LG화학에서 물적분할로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주식시장에 엄청난 화제와 수급에 있어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물적분할: 모회사가 사업부 일부를 떼어내 새 회사를 만들고, 신설회사의 지분을 100% 소유하는 기업 분할 형태를 말하는데, 알짜배기 사업부를 새로 상장시키면서 기존 주주들에게 손해를 주는 행위로 본질적으로 주주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 주식시장의 잘못된 관행으로 최근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엔솔로 수급이 쏠려 시퍼렇게 멍든 내 보유 종목 창을 보면서 (미국 금리인상 예고와 우크라이나 긴장 상황 등 여러 이슈로 시장이 너무 안 좋았다. 제일 문제는 내 똥 손 때문이지만...) 엔솔 덕에 먹는 꽈배기 맛은 묘했다.
재작년과 작년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시장에 유동성이 늘어, 모든 자산 가격이 오르고 있는 상황에 너도 나도 코인과 주식 투자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때,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개미는 왜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투자하는가?>는 특이한 책이다. 한쪽 눈을 가린 장밋빛 전망으로 아직도 시장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확정 짓지도 않은 몇 백억, 몇 백 프로 수익률을 내세워 선량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내용도 아니다. 주식 시장에서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불리할 수밖에 없는 개인 투자자들이 많은 실패 사례를 보고, 직접 경험하면서도 왜 계속 투자를 하는 이유를 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이 책의 시작은 2019년 저자인 김수현 작가의 인류학과 석사 논문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의 논문은 재테크 단톡방을 뜨겁게 달궜다. 개인 투자자 900만 시대를 돌파한 시점에 코스피 지수가 최저점을 찍은 후에 논문의 내용은 필패를 거울 삼아 부적과 같은 효험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의 반면교사가 되고 있었다. 트위터상에서 밈으로 회자되던 논문은 5만 건 가까운 다운로드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서로 옷을 갈아입고 이 책으로 나왔다.
이 책은 저자가 서울의 한 매매방인 '로열 매매방'(물론, 가칭이다.)에 입실, 그곳에서 만난 개인 전업투자자들과의 심층 면담을 바탕으로 쓴 생생한 기록물이자 독창적인 르포르타주이다. 속칭 개미 투자자로 시작한 매매방의 그들이 어떠한 인생 경로로 전업 투자자로 변신을 하고, 어떤 매매원칙을 가지면서 투자를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잃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매방에 출근할 수밖에 없는 그들을 단순히 수익률로 딱지가 붙어 있는 투자자가 아니라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으로 바라보며, 전업 투자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의 모순에 한발 한발 접근한다.
책의 표지에는 한 사람이 절실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보인다.
매일 아침 주식 장이 열리 전에 우리들의 모습이다.
도박장에서 주사위 굴리는 녹색 테이블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바닥에 그려진 번호에 소중한 우리들의 돈을 배팅하는 모습. 자기 과신, 확신 편향, 보유 편향이 믿음이 돼버리는 순간 우리는 돈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공식적인 개인 투자자의 통계자료가 풍부하지 않아, 저자가 매매방에서 인터뷰한 사람들의 경험으로 한정되어 있는 부분, 은퇴 후 전업 투자로 전향하신 분들로만 한정된 지점은 전국민적으로 불고 있는 투자 열풍의 방향과 세기를 진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화려한 무대 위에서 비치는 조명 한편에 드리우는 욕망과 좌절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기회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