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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보이 Feb 24. 2022

포와로와 셜록홈즈

[책] 『미스터리 가이드북』, 윤영천(decca), 한스미디어

1985년. MBC 수사극인 <수사반장>이 종영 7개월 만에 다시 전파를 탄 그해 여름.

초등학교 (당시 국민학교) 6학년 교실에서 이제 막 자기의 취향에 대해서 인식하기 시작하고, 자기만의 정체성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녀석들이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탐정은 포와로가 최고야!"

"뭐래니, 탐정하면 셜록홈즈지! 어디다 달걀 머리 대머리 아저씨를 들이대냐!"

그 당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빨간 표지의 애거사 크리스티 추리소설 시리즈를 탐닉했던 나와 계림문고에서 나왔던 셜록홈즈 시리즈에 빠져있던 친구와의 논쟁은 이후 누가 더 훌륭한 탐정을 추종하는가를 두고 내내 다툼이 잦았다.

나는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 특유의 범죄 심리 묘사와 서사에 반했다면, 그 친구는 셜록홈즈의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를 흠모했다.

그런 우리 사이를 한심하게 지켜보던 한 친구가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그럼, 포와로와 홈즈 중에 누가 나이가 많아? 그냥 형이 이긴 걸로 하고 그냥 넘어가라!"

이런 사이비 장유유서 맹신자 같은 녀석...



이 책 <미스터리 가이드북>의 부제는 "한 권으로 살펴보는 미스터리 장르의 모든 것"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그 지역의 역사와 꼭 가봐야 하는 명소를 사전에 조사하듯이 (다 이렇게 하지 않나요?...), 게임하다가 막히는 스테이션을 해결하기 위해서 게임 공략집을 보듯, 미스터리 장르를 탐험하기에 이만한 가이드북이 없다.

저자인 윤영천 작가는 미스터리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마니아이며, 기획자이고, 작가이다. 1999년부터 나우누리 추리문학동호회 시솝을 5년간 역임했고, 같은 해 미스터리 소설을 소개하고 독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는 하우미스터리(howmystery.com)를 만들어 20년 넘게 운영하는 중이다. 어린 시절 우연히 <에밀과 탐정들>을 읽고 미스터리에 관심을 갖게 된 지 35년이 되었고, 이제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전혀 지나치지 않음을 확신케 한다.


미스터리의 역사와 장르적 특성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러 갈래로 파생된 서브 장르들 간의 차이까지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게 그거 같고, 이게 이거 같던 장르들의 맥락이 잡히는 느낌이다. 물론, 작품을 순수하게 즐기는 데 있어, 하드보일드와 코지 미스터리의 역사와 특징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저자의 정리를 접하고 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대한 구분처럼 말이다.

미스터리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며, 스릴러는 앞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


요리가 선사하는 맛과 향의 특징을 알았다면, 좀 더 들어가서 요리의 레시피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이 그려졌으니, 세부적인 기법으로 들어갈 차례다. 마술사가 손과 시선, 몸동작과 언어 등을 이용해 관객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듯이 작가는 서술을 통해 독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시각적인 이미지를 기만한다. 이런 기법을 '레드 헤링(red herring)-훈제 청어'이라고 한다. 탈옥수들이 사냥개를 따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훈제 청어를 사용했듯이, 작가들은 우리들이 진범을 찾지 못하도록 관심을 돌린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보이지 않은 머리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두뇌 게임은 알리바이, 밀실, 트릭 등 여러 장르적 장치들로 인해 흥미진진해진다. 미스터리 장르는 작가가 만들어낸 무대 위에 독자도 올라가서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꾸미는 연극이 아닐까 싶다.


이 외에도 책에는 미스터리 작품을 실제로 쓰기 위해 필요한 창작 기법들, 책의 띠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스터리 상들 (예를 들어, 에드가상, 대거상, 에도가와 란포상 등...) 이야기와 대부분 일본에서 만들어진 흥미를 끄는 각종 랭킹들, 세계 3대 미스터리 작품이라던가, 3대 탐정이라던가...

그리고, 책을 덮고 나가려는 독자를 붙들고 또 다른 미스터리 공간으로 인도하는 것이 저자가 추천하는 작품 100선이다. 미스터리 장르의 역사적 흐름에 따른 추천 미스터리 100선!

1841년 <모르가 거리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를 시작으로 1926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애거사 크리스티, 1938년 <레베카> 대프니 듀 모리에, 1939년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1955년 <재능 있는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1963년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존 르 카레, 1975년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1981년 <점성술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1990년 <LA 컨피덴셜> 제임스 엘로이, 1993년 <심플 플랜> 스콧 스미스, 2001년 <모방범> 미야베 미유키, 2011년 <알렉스> 피에르 르메트르, 2012년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2016년 <맥파이 살인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등등...

책 제목과 작가 이름만 봐도 로스 맥도널드 책 제목 마냥 <소름> 돋는다.

셀레이는 소름 말이다.




6학년 때 탐정 논쟁을 벌였던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혹시 어쩌면 <미스터리 가이드북>을 읽으며 그때 그 일을 추억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건강히 지내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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