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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보이 Feb 04. 2022

당신의 일상 속 '다정'을 찾아서.

[책] 『다정소감』, 김혼비 산문집, 안온북스, 2021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고민이 되는 것들 중 하나가 호칭이다. (고민되는 것이 호칭뿐이겠냐 만은...) 같은 직장 내에서야 직급을 계속 추적할 수 있으니까 '그분' 혹은 '그 양반'을 과장, 부장, 이사 등 직급으로 부르거나 팀장, 실장 등 직책으로 부를 수 있다. 일로 만난 관계가 호칭으로 명쾌하게 정리될 수 있다. 그런데 직급과 직책에 대한 추적이 끊긴 상태에서 오랜만에 불러야 할 때 호칭이 난감하다. 나와 관계를 갖던 시절에는 팀장이었다가 지금은 면팀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고... 혹은 승진을 했다고는 들었는데 정확하게 어떤 레벨로 승진으로 되었는지 정보가 정확하지 않아 순간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나도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그리고 나름 우여곡절이 심한 조직생활을 하다 보니 실장이었다가 팀장이었다가 부장이었다가 상무가 었다가 들쭉날쭉 호칭을 가지고 있어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을 헷갈리게 할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호칭이 대수인가 싶은데, 일로 만난 관계에서는 사회적 의미가 있나 보다. 

얼마 전에 이전 직장 후배들과 술자리를 오랜만에 가졌다. 각각의 후배들을 어디서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만났는지에 따라 나를 부르는 호칭들이 제 각각이었다. 어떤 친구는 팀장으로, 어떤 친구는 실장으로, 어떤 친구는 부장으로... 교차되는 술잔과 함께 이런저런 호칭들이 뒤엉키자 한 친구가 속 시원한 제안을 했다. 


"이제부터 그냥 형으로 부를게요!" 


사회적 거리가 무너지는 시간이었다. 일로 만난 사이에서 정으로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관계가 탄생하는 그 순간 나는 '다정'을 느꼈다.


김혼비 작가의 책 『다정소감은 그가 일상을 통해 느낀 소소하지만 의미가 있는 '다정'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엮은 에세이다.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선입견 때문에 삐딱한 시선에 억울하게 놓일 뻔한 중년 여행객들에게 느꼈던 다정, 작가가 승무원이었던 시절. 승무원스러운(?) 치장에 익숙지 않았던, 특히 올림머리에 잼병이었던 그에게 첫 비행을 앞둔 새벽에 동료들이 찾아와 화장과 머리손질을 도와줬던 다정, 친구가 해준 '진짜 미친 사리곰탕면'을 먹고 힘든 시기를 통과했던 다정들... 이러한 다정들에 대한 김혼비 작가의 소감들이 담겨있다.


『다정소감』은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로부터 일상의 수다를 듣는 느낌이다. 햇빛이 따스하게 품어주는 카페 창가에 앉아 재잘거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뿌듯하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나랑 같은 생각에는 "맞아, 맞아", 독특한 시선과 참신한 결론에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가끔 과장된 비유와 썰렁한 농담에는 "워~워~". 무엇보다 나에게 김혼비 작가는 분명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좋은 친구라는 점이다. 겉치레와 허세를 싫어하고, 누구나 빠질 수 있는 선입견과 편견을 항상 경계하고, 타인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 

어쩌면 내가 닮고 싶은 친구이기도 하다.


P.S. 어쩌다 보니, 김혼비 작가의 책을 계속 읽어 왔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친구』, 『아무튼, 술』, 『전국축제자랑』, 그리고 『다정소감』까지... 이러다 『아무튼, 김혼비』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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