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산책길에는 비가 내렸다.
모자만 쓰고 나갈까 했는데, 생각보다 빗방울이 굵었다.
번거롭더라도 우산이 필요했다.
거추장스럽다 생각했던 우산 속에서 듣는 빗소리가 의외로 운치 있었다.
나만의 배경 음악처럼, 일정하고 단단한 리듬이 우산 위에서, 그리고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사람도 적고, 차도 뜸했다.
그 고요함이 좋아서 천천히 걸었다.
잠시후, 그 고요함을 깬 것은 주머니 속 휴대폰의 진동이었다.
처음엔 빗소리에 묻혀 잘 몰랐지만, 반복되는 진동에 결국 발걸음을 멈췄다.
쓰레드였다.
2년 만에 생존 신고처럼 인스타그램에 올린 책장 사진이,
나도 모르는 사이 쓰레드에도 자동으로 공유된 모양이었다.
낯선 사람들의 댓글이 이어지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낯섦이 불쾌하지 않았다.
'쓰팔', '쓰하', '스하리'… 낯선 단어들이 반말과 함께 내 게시물 아래 차곡차곡 쌓여갔다.
익숙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들이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장난기 섞인 인사처럼 다가왔다.
쓰레드를 이용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우면서도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 본 사람의 게시물에,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반말로 댓글을 다는 문화.
그 문화는 어떤 심리와 감각 위에 형성된 걸까?
낯선 이에게 마치 친구처럼 다가가는 방식, 그것은 일종의 디지털 공동체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공감의 깊이보다 '빠른 동참'이 우선인 시대, 말투와 거리감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이들만의 방식.
낯섦을 낯설어하지 않으려는, 새로운 세대의 언어 감각이 거기에 있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저런 호기심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인스타그램도 시들해져 2년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이렇게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아무 부담 없이, 가볍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
잊고 지냈던 나의 소셜 감각을 일깨웠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겪어보지 못한 방식의 관계들이 존재하는구나.
그렇게, 나도 모르게 생각이 깊어졌다.
밤은 여전히 고요했고, 골목의 가로등 불빛은 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 쥔 6.9인치 화면 속에서는 전혀 다른 리듬의 세계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https://youtu.be/-UtAV_azaBc?si=4Hps9vLplNpg3N0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