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밤산책

밤산책 12: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

by 말로

습하고 무더운 밤이었다.


도대체 한여름엔 얼마나 더우려고 이러나 싶어 걱정이 되었다.

이런 밤이 계속된다면, 진짜 여름이 오기 전에 밤산책은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후 위기를 만든 인간들이 괜히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 인간들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운 밤보다 더 껄끄러웠다.

한 줌 먼지만도 못한 인간들이 지구에 끼친 해를, 우리 후손에게 넘겨줄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졌다.


그때, 가로등 아래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황금빛 털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고, 이른 더위에 지친 듯 웅크린 자세로 나를 바라봤다.

도망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돌려, 빤히 나를 쳐다봤다.

마치, “너희들 때문이야”라고 말하듯이. 말 없는 생명이 주는 핀잔은 묘하게 오래 남는다.


KakaoTalk_Photo_2025-05-22-23-06-12 001.jpeg


해를 끼치지 않는 인간이 있을까, 문득 생각했다.

그러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가 떠올랐다.


정착하지 않고 도시를 떠돌며, 계절 따라 머물다 가는 사람.

누구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는 아니었지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조용히 감당하며, 조용히 사라졌던 사람.


만약 우리가 모두 크눌프 같았다면— 기후 위기 같은 건 오지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금빛 고양이는 고개를 돌려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무엇도 남기지 않은 채 떠나는 존재가 어쩐지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밤산책 11: 비 오는 밤, 낯선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