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간다.
습기는 남아 있지만, 낮의 열기를 잠재운 바람이 조금씩 흐른다.
습관처럼 걷는 길 위에서 며칠째 멈춰버린 온라인 서점 앱을 떠올린다.
책을 한 권 고르고,
공연을 하나 예매하는 일상의 작은 일들이 랜섬웨어라는 단어 앞에서 무력하게 멈춰 섰다.
모든 사태에는 신호가 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종종 잡음으로 흘려보낸다.
예스24의 서버가 암호화로 봉쇄되기 전, 분명 어딘가에서는 미세한 균열음이 울렸을 것이다.
무심히 넘긴 경고 로그, 바쁘다는 핑계로 미룬 보안 패치, ‘설마 우리에게’라는 안일함. 그 사소한 놓침들이 모여, 결국 단단해 보이던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건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균열, 몸의 이상, 마음속에서 반복되던 불편한 느낌들.
외면해 온 작은 불안들은 언젠가 ‘위기’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다.
그리고 그때 필요한 것은 문제를 얼마나 오래 감춰왔느냐가 아니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예스24는 사태 초기 이틀을 ‘시스템 점검’이라는 말로 넘겼다.
하지만 혼돈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늘 정직함이다.
무엇이 망가졌는지 인정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분별하며,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 요청하는 것.
감추려 할수록 불신은 커지고, 시간을 잃는다.
언제나 복구의 첫걸음은 투명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골목길 끝에 선다.
어둠 속에서 문득 묻게 된다.
나 역시 예상치 못한 실패 앞에 섰을 때, 정직할 수 있었던가.
변명 대신 ‘지금 무엇이 최선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었던가.
혼돈 속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려 담담히 다음 발걸음을 내딛을 용기가 있었던가.
이번 사태는 한 기업의 위기이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닿는 작은 신호일지 모른다.
우리는 일상의 소음에 길들어 삶의 신호들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문제가 닥쳤을 때, 회피가 아니라 정직한 해결을 선택하고 있는가.
오늘 밤도 누군가는 사무실과 서버실 어딘가에서 긴장 속에 사태를 수습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밤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다.
멈춰 선 서점의 불빛처럼, 내 삶의 어딘가도 잠시 멈춰 서서 점검이 필요한 지점일지 모른다.
오늘 밤의 산책은 그 희미한 신호들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용한 걸음이다.
잡음 속에서 진짜 들어야 할 목소리를 찾으려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발걸음이다.
https://youtu.be/p-ca1ocriv0?si=annbwLC5kC9Bh0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