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기억의 습작

by 말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얼마나 사실에 가깝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rewind 할 수 없는 시간의 숙명에 던져진 우리가 의미 없이 했던 행동들이 타인에게 그리고 역사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영국작가 줄리언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원제: The Sense Of An Ending)를 통해서 우리가 과거 사실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불확실하며, 우리가 통제 할 수 있는 것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무기력감을 충격적인 반전을 통해 던져 주고 있다.

(한글판 제목은 원작과 달리 좀더 반전을 강조하고 있다...사실 예감은 하나도 맞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소설의 물리적인 분량은 많지 않다. 1부와 2부로 나눠서 있고 원서 150페이지짜리 짧은 소설이다.

하지만 주제의 철학적 의미와 깊이는 읽는 이에 따라 각각 다른 울림으로 다가 올 수 있다.

지은이 줄리언반스가 "나는 이 작품이 3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했듯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다시 1부로 거슬러 올라가 기억을 되짚게 만드는 묘한 이야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60년대 영국 케임브리지. 장래가 촉망되던 장학생 에이드리언이 욕실에서 동맥을 긋고 자살하면서 부터 그의 친구이나 이책의 화자인 토니의 기억과 의식의 흐름에 따라 비극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토니와 그의 친구 무리들은 전학생 에이드리언의 남다른 지적 능력과 철학적 사색을 동경하며, 친구이지만 인정받고 싶어하는 묘한 감정을 가지고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고, 각자 대학에 진학해서도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그러던 중 토니가 베로니카라는 여자를 사귀게 되지만, 결국 우상이면서도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에게 베로니카를 뺏기게 되면서 토니와 에이드리언의 우정도, 동경도 끝을 맺는다.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와 함께..그리고 이책의 1부도 끝나게 된다.


에이드리언의 자살 후 40여년이 흐른 2부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던 토니에게 과거의 여자친구 였던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2가지 유산-500파운드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기면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40년의 세월이 하나 둘씩 퍼즐 맞추듯이 형상을 나타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토니의 기억의 흐름만을 의지하여 읽어온 나에게 커다란 배신과 반전을 남기게 된다.

특히, 책의 마지막 2페이지를 통해 밝혀 지는 반전은 대혼란 속에 덩그러니 서있을 수 밖에 없는 토니와 그리고 나를 발견할 수 있다.


1부에서 스쳐 지나쳐온 사건과 상황 그리고 그 속의 문장들이 종국으로 치닫음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와 얼개가 되어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이 소설은 결코 장르 소설이 아니다.


반전이 있긴 하지만, 사건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 반전을 통해 주변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는 화자와 독자들에게 던져지는 무력감과 인간 인지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사건 중심의 서술이 아닌 화자인 토니의 기억과 의식의 흐름을 쫓아 가야 하기에 술술 읽혀지는 서술 구조는 아니지만, 내 과거 속에 스쳐 지나갔던 등장인물과 그와 연관된 기억들을 다시 소환해 볼 수 있는 기회만으로도 읽을 가치, 생각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이 책. 종이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