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초고

옆집 학생과 Layla

by 말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지은 지 꽤 오래되었다. 확실히 언제 지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외벽에 덧칠한 페인트의 속살이 보이고, 실내 구조도 예민하게 불편한 느낌이 있다. 오래된 아파트가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특이한 부분은 방음이다. 위층 아래층 사이 방음은 괜찮은 것 같은데, 옆집의 생활 소음이 가끔 들린다. 단지 위층 이웃을 잘 만난 행운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옆집 소리가 가끔 넘어온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TV 소리라든가, 그 집 아주머니께서 누군가를 혼내는 소리가 들려온다.(그 대상이 아들인지 남편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고 파도가 가끔 방파제를 넘어오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 토요일 한낮에도 소리가 넘어왔다. 와이프도 외출하고 나 혼자만의 주말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며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방안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내 목소리로만 채워지고 있었는데, 옆집에서 기타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들어도 원활한 코드 진행이 아닌 속도 방지턱에 턱턱 걸리는 듯한 기타 연주 었다. 아마 옆집 학생이 기타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며 가며 가끔 마주치면 쑥스러운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던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그 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집중해서 들었다.


구간 반복 재생하듯 동일한 리듬이 계속 반복되었다. 아마도 그 부분이 잘 넘어가질 않나 보다. 이런저런 장애물을 넘어가며 간식을 향해 달려가는 강아지의 모습이 연상되어 제법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리듬을 계속 듣다 보니 왠지 귀에 익숙한 곡이었다. 그 곡은 에릭 클랩튼의 <Layla> 었다.


<Layla>는 에릭 클랩튼이 작사, 작곡하고 그가 참여했던 블루스 록밴드 '데렉 앤 더 도미노스'가 70년 초반에 발표한 곡으로 지금까지 록의 명곡으로 손에 꼽힌다. 격렬한 기타 연주가 어느 순간 분위기를 바뀌며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마무리되는 진행 방식과 리듬은 듣고 나면 긴 여운을 남긴다.

이 곡은 또 다른 면에서도 여운이 남는데, 그 이유는 에릭 클랩튼이 곡을 만든 배경에 있지 않나 싶다. 공식적으로는 <Layla>는 옛날 페르시아 시인의 노래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소녀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실상은 에릭 클랩튼이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부인 패티 보이드를 향한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친구의 아내를 흠모하는 노래랄까?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엮인 이야기들이 매우 복잡하다. 조지 해리슨이 바람피우고 가정에 소홀하여 부인인 패티 보이드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에릭 클랩톤을 이용해 조지의 관심을 끌려했다는 둥. 그러나 조지는 그들(에릭+패티)에게 신경도 안 쓰고 비틀스 멤버인 링고 스타의 부인 모린 콕스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둥. 그러자 패티 보이드는 에릭 클랩튼과 결혼 하지만 에릭 클랩튼이 밖에서 사생아를 데리고 오면서 파탄에 이르러 이혼하게 됐다는 둥.

사랑과 전쟁의 배경음악으로 쓰일만한 후일담을 갖고 있는 곡이다.

PbMk1p-700x990.jpeg 2017년 ROCKIN' LOVE_패티 보이드 사진전 포스터


부실한 방음과 옆집 학생의 기타 연습 덕분에 주말 한낮에 갑작스레 <Layla>가 듣고 싶어 졌다. 바로 유튜브에서 찾아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다. 곡 오프닝의 강렬한 기타 리프는 언제 들어도 심장을 뜨겁게 하는 흥분과 사랑을 갈구하는 열정이 느껴진다. 나중에 에릭 클랩튼이 언플러그드에서 연주한 어쿠스틱 버전은 그 흥분과 열정을 관조하는 또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명곡은 언제 들어도 명곡이다.

The Madison Square Garden concert in 1999

한참을 <Layla>에 취해 있다 깨어보니, 옆집 학생의 기타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 방의 <Layla>가 옆집 학생의 연습을 방해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정말 별 뜻 없었는데...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옆집 학생만의 멋진 <Layla>가 완성되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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