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초고

울산 어린이집 학대와 소명의식

by 말로

슬픈 일이 또다시 일어났다.

울산에 있는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학대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TV 뉴스에서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장면을 녹화한 CCTV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 속 교사는 마치 포대자루에 먼지 털어내듯이 아이의 뒷덜미를 쥐고는 흔들며 내던지고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다른 영상에서는 아이의 허벅지를 교사가 질근질근 밟는 모습이 찍혔다. 단지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학대가 이어졌던 것이다. 아이가 선천적으로 호흡기 질환이 있어 식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해당 부모가 상담 때마다 인지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고문 같은 학대가 대여섯 살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학대받은 아이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아이들이 받았을 공포와 불안, 그리고 커가면서 아이들에게 새겨질 트라우마를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더욱 우울한 것은 이런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낮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의 얼굴을 이불로 덮기도 하고, 강제로 음식을 먹이고 손발을 청테이프로 묶는 등 개별 사건 하나하나가 충격적이고, 발생 추이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다.

이슈 되지 못하고 보도되지 않거나 CCTV 사각지대에 벌어지고 있을 학대까지 상상하면 그 불안은 더 커진다.

어린이집 학대 사건들이 주는 피해는 당사자인 아이와 부모뿐만 아니라 진심을 다해 아이를 돌보고 있는 많은 교사들이 불신과 의욕상실로 지치고, 사회 보육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 왜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날까?

울산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비롯한 가해자들이 모두 악마여서일까? 당연히 가해자들의 개인적인 책임과 인성이 1차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우리가 오며 가며 흔히 마주치는 누군가의 딸이고, 누나이고, 동생일 것이다. 저녁 무렵 또래 친구들과 맥주 한잔 마시며 고민을 하소연하는 평범한 친구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똘아이도 많다지만,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손가락질 하기엔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전문가도 아니고 뭣도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은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었다.

왜 가해자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직업을 선택했을까?라는 질문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저렇게 아이들을 지긋지긋해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보육교사를 선택해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단 한 번이라도 보육교사가 갖고 있는 책임과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을까? 본인들이 아이들을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을까? 남다른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갖춘 심성이 보육교사가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이 아닐까? 단지 취업을 위해 관련 학과나 학원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따는 것만으로는 그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부여되지 않는다. 소명의식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면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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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보육교사뿐이랴...

환자를 사랑하지 않는 의사, 진실을 외면하는 기자, 정의를 권력 밑에 두는 검찰,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치인 등 우리는 주변에서 직업이 갖고 있어야 할 소명의식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소명의식 없이 선택된 직업은 본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불행으로 몰고 간다. 천직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인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서 최소한의 소명의식을 갖춰야 할 직업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소명의식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뭘 좋아하고, 뭘 잘하고, 뭘 하면 행복한지 돌아보지 못한 상태에서 부모와 주위 사람들에게 떠밀려 학교와 직장이라는 정해진 트랙에 올라와 달리게 된다. 그때부터는 왜 달리는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옆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기 위해서 무조건 뛴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달리는 트랙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면 주위에서 "어쩌려고 그래?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아우성이다. 스스로가 불안해진다. 실패자의 그림자가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다. 아예 경기장 밖으로 퇴출당할 것 같은 불안이 엄습해 온다. 스스로에 대한 고민도 없이 다시 트랙에 올라온다. 그리고 그냥 또 달린다.


답이 딱히 있지는 않다. 정작 나는 어떤가?

중년의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고 사는 것이 영원한 사춘기라면 좋아할 일은 아니지 않나?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이고 나의 천직이라고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저 돈벌이 수단일 뿐이며 순간순간을 모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나를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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