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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07. 2020

[제주일기 19] 법환 포구에서 점심을

 제주에 태풍이 상륙한다는 소식을 전할 때 방송국 기자들은 법환 포구에 간다. 그러니 육지에 사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이곳을 뉴스에서 봤을 것이다. 태풍이 오면 파도가 직격탄으로 바위를 치고 사납게 솟아오른다. 그 장면을 담으려고 부러 기자들이 비옷을 입고 부서지는 파도의 물보라를 맞는 법환 포구의 한가운데를 찾아온다. 


 태풍 전야에 법환 포구에 가보고 알았다. 왜 도민들은 바다 인접에 지은 집에 살지 않는지, 바다에 한 발짝이라도 가까이 살려는 사람들은 왜 육지 것들인지. 내가 제주에 내려갔을 당시에도 법환 포구에 리조트와 주택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집은 도시인의 로망이었지만, 그건 평온한 날의 바다만을 상상했을 때 건설된 로망이다. 바다를 보려고 낸 통창으로는 태풍도 찾아온다. 태풍이 아니어도 바람 많은 제주다. 게다가 바닷바람은 염분을 머금고 집으로 달려들어 집이 금방 삭는다. 당연히 습도도 높다. 바다를 품고 사는 집은 감당해야 할 게 많다. 


 제주에 여러 포구가 있지만, 법환 포구는 제주 남쪽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포구는 배가 드나드는 어귀로, 바다와 인접한 입구다. 그래서 이곳의 카페와 식당은 바다 뷰가 기본이다. 파도치는 바다에 맞닿은 해안도로가 있고, 안쪽으로는 집과 호텔이 바다를 향해있다. 가장 좋은 건 법환 포구가 우리 회사에서는 차로 5분 거리라는 사실이다. 차가 있는 동료만 잘 꼬드기면 언제든 바다를 보며 밥을 먹고, 바다를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고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바다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흐린 대로 먹구름에 바람과 춤추는 바다, 햇빛을 마주하고 반사광이 일렁이는 바다. 바다는 매일, 매 순간 달랐다. 물론 회사 테라스만 나가도 하늘 가득, 바다가 저 멀리 보인다. 그래도 점심시간에 바다로 달려 나가 창문 가득 넘실대는 파도를 보며 밥을 먹고 오면 기분이 다르다. 바다와 하늘이 닿아있는 수평선을 눈에 담고 있노라면, 지금의 근심과 걱정은 먼바다에 파도치는 일과 바람이 불어 구름이 움직이는 생의 순환고리에서 별 일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골몰하던 고민 덩어리가 대세에 지장이 없는 돌과 같아서, 한발 떨어져서 고민을 관조하게 된다. 혹은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바닷물에 씻어 하늘에 말리고 온다는 상상이라도 한다. 문제는 달라지지 않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내가 달라져있다. 법환 포구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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