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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May 08. 2020

[제주일기 25] 제주에서 도민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 제주에 산다는 것, 친구를 사귄다는 것에 대하여

집 근처에 기구 필라테스를 하는 곳을 발견하고 바로 등록했다. 평일에는 퇴근하면 집 근처에 도민 맛집을 찾아다니며 동료들과 저녁을 먹고 금요일 저녁에는 쏘주(소주 아님 쏘주임) 한 병 기울이며 캬아~ 캬아~ 거리고 2차까지 마셨는데도 10시밖에 안됐다며, 흥에 올라 밤거리를 쏘다녔다. 공기 좋은 곳에서는 혈액순환과 뇌에 신선한 피가 공급되어 정말로 잘 취하지 않는다(술꾼 피셜). 제주의 가을밤, 즐거운 날 들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필라테스 수업을 들었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제주 사람이었다. 정확한 나이는 물어본 적이 없어 모르지만 아마도 이십 대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나이대도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해서 수업이 끝나면 제주에 대해서 궁금했던 점들을 물어보곤 했는데, 인스타에 유명한 밥집 △△는 가 봤는지? 오름은 어딜 가면 좋은지? 도민인 선생님은 친구들하고 주말에 어디에 가는지? 이런 소소한 것들이었다. 그녀는 내가 제주도에 오고 업무와 상관없이 알게 된 첫 내 나이 또래 제주 도민이었다. 즐거이 수업도 하고, 수다도 떨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업적, 업무적 관계가 아니고서 나는 제주도에서 도민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아이가 있는 회사 선배들은 지역사회에 잘 스며들고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아이들이 맺는 친구가 있고, 아파트에 살며 마주치는 이웃이 생기다 보니 친구와 주변 사람들을 사귈 경로가 많아 보였다. 반면, 나는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노력이 기본적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가만히 집과 회사를 반복하는 삶에는 자연스레 생기는 친구는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회사 동료들과 퇴근 후 보내는 시간도 즐겁고, 주말에 함께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고, 장을 보고, 바다를 보러 가는 모든 것이 즐겁지만 제주에 살기 시작했다고 하면서도 3개월이 지나도록 동네에 주변에 친구 하나 없다면 그게 진짜 ‘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방 한 칸 얻어 살고 있기에 행정법상으로 제주도는 나를 도민으로 받아주지만, 나는 제주도 사회에 스며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1년, 5년, 10년이 지나면 친구가 얼마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는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더라, 곰곰이 기억을 끄집어 내 보기까지 했다. 제주에서 나는 무늬만 살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뿌리는커녕 발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고 조금 오래 거주한 관광객에 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관광객 맛집을 피해 도민 맛집을 드나들고, 제주 로컬뉴스를 보고, 주소지가 제주 도민으로 분류되고, 매일 서귀포에 회사를 다닌다 한들, 제주 사람 한 명 사귀지 못하면 떠도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웃이라고 해봤자 회사 동료들밖에 모르는데, 방 한 칸 얻어 몸만 의탁한다고 도민 일리 없었다. 바다에 내린 돛처럼 생각이 깊어지는 밤, 회의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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