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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8] 제주에서 고서방 찾기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8]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 제주에서 고서방 찾기


 제주 이주를 앞둔 여직원이라면 연애를 일제 식민지 시절 독립운동처럼 해야 한다고, 나는 독립투사처럼 은밀히 말하고 다녔다. 왜냐하면 제주도에 살러간다는 이유로 차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달달하게 연애를 시작하려는 찰나, 제주행 고백을 들은 상대는 몹시 난감해하며 연락이 두절됐다. 썸을 탈 때는 전화를 행여 안 받으면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던 그는 제주도에 간다는 얘기에 질겁하고 도망가 버렸다. 해외 유학이나 군대를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 여기서 접자고 했다. 맞는 말은 아닌데, 딱히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 후 소개팅이나 모임에서 이성을 만날 때면 제주에 간다는 사실을 숨겼다. 마치 항일운동하는 투사처럼 나름 비장했다. 내 이야기는 싱글 여직원들 사이에서 태극기의 물결처럼 전파됐고, 진지한 사이가 되기 전에는 다들 구국운동하는 애국지사처럼 한 마음으로 제주행 사실을 숨겨야 한다는 지령을 (나혼자) 퍼트렸다. 독립운동에 감히 비견할 일이 아니었는데, 당시 내 마음은 그랬다. 특히 제주에 가면 이성을 만나기 어려울 거란 우려가 컸다. 안 그래도 여자, 돌, 바람 많은 삼다도 제주에 여자 독신 인구 1명을 보태기만 할 것 같았다. 섬에서 해 질 녘 노을을 보고, 주말엔 신선한 회에 소주병을 기울이는 많은 밤들을 홀로 보낼 것 같은 예감을 피하기 어려웠다. 대게 이런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제주도에서 뜨내기 관광객과 여름 한철, 주말에 잠깐 눈 맞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서울 지하철과 대로변에 쓸려 다니는 인파와 마음만 먹으면 매일도 갈 수 있는 각종 사교모임 속에서도 인연을 찾기 어려운데, 하물며 제주에서는 더 장벽이 클 게 뻔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제주에서 보다 어려울까.


 회사가 지방에 내려가면 사내 커플이 늘어난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서울에서는 밖으로만 돌 던 시선이 둘 곳이 없어 안으로 향한다는 말이었다. 마음에 드는 직원이 있었다면, 진작 사내연애를 걸었을 터였다. 마음이 아니라 고립된 환경에서 유대감으로 싹트는 연애는 왠지 달갑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그토록 싫어하던 소개팅도 한두 번 했고, 나보다 더 다급한 부모님도 갑자기 주변에서 혼처를 찾으며 중매에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연애를 하게 된 남자는 회사일로 알게 된 사람이라 제주행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신분을 숨긴 애국투사인 척하던 나의 연애는, 숨길 필요 없었던 사람과 시작됐다. 장거리 연애도 함께 부록처럼 딸려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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