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처럼, ZARA(자라)가 눈에 띄면 나도 모르게 매장에서 장바구니를 집어 들곤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디자인도 다양해 나를 포함한 여성들이 즐겨 찾는 쇼핑 스팟이다. 제주도에도 자라가 있을까 싶어, 네이버 지도 앱을 켜고 ‘제주도 자라’를 검색하면 세 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더자라 무인텔, 더자라 무인텔 입구, 뜬금없이 느껴지는 자라 거리까지. 검색 결과를 보고 눈물이 휘날리게 육지에만 있는 ZARA로 달려간다.
대략 제주 살이 6개월 정도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서울놀이를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점심을 먹고 어느 카페에 갈지 고민하며 제주도에 스타벅스, 커피빈, 폴바셋이 있는지 검색한다. 제주에 스타벅스는 있지만(도시 산간 가리지 않고 진출하는 진취적인 스타벅스! 이런 건 아주 칭찬해) 커피빈과 폴바셋 등등이 없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커피숍으로 간다. 제주에 없는 카페, 음식점, 체인점을 우선순위로 찾아다녔다. 도심에서 즐겨하던 사이렌 오더도 제주 가면 할 일이 없을 테니 괜히 더 소중했다.
서울에서 이제는 꽤나 흔해진 독립영화관도 제주에 가면 사치가 될 것 같았다. 서귀포에 영화관은 롯데시네마 하나. ONLY ONE.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저스트 원, 혹시 잘 못 본 것인가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해봐도 온리 원. 강남에 살 때는 걸어서 갈 수 있는 영화관만 두 개, 버스나 택시로 갈 수 있는 영화관은 무궁무진했는데. 이젠 걸어가는 영화관 나들이 같은 기억으로 추억해야겠지...
같은 이유로 올해 봄과 가을에는 콘서트, 문화공연, 페스티벌에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주말에는 구역을 정해서 돌아다녔다. 서촌, 신사 가로수길, 강남대로, 코엑스, 한남동과 이태원, 을지로 등등. 행여 못 가본 서울의 핫스팟이 있을까 봐 힙플레이스 하나 놓칠세라 전전긍긍해하며 계획적으로 놀러 다녔다.
서울에 이 많은 맛집들-이미 알고 있는 맛과 모르는 맛을 두고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한 집 건너 한집으로 있는 술집들, 1차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2차에서는 와인을 3차와 4차 5차까지 달리고 포장마차에서 뜨거운 가락국수 국물로 속을 달래며 집에 갈 수 있었던 도시의 기막힌 인프라들을 차마 잊을 수 없었다. 서귀포에서는, 밤에 택시를 타기도 쉽지 않고 가게들도 일찍 문을 닫으며 맛 집은 서로 마치 싸운 듯이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아아, 미세먼지마저 견디는 내가 정녕 서울을 떠나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