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제주 살이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서울의 모든 것이 사진 앱의 뽀샤시 필터를 극강으로 씌운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필터는 서울의 지저분한 디테일은 지우고,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해 서울을 미화한 이미지를 시신경으로 전달했다.
뾰로롱! 뽀샤시 필터가 단단히 눈에 씐 첫 번째 증거로,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아이서울유’ 캐치 프레이즈가 갑자기 마음속에 북한 응원단의 매스게임 구호처럼 강렬하게 일렁였다. 주말에는 동네를 정해 골목골목 걸으며 “어머! 이런 힙플레이스가 또 생겼네!”, “아앗~ 서울에는 맛집 옆 또 맛집, 맛집 옆에 또 술집이야!” 라며 도시인으로서 얼마 남지 않은 삶에 푹 젖어들었다. 책도, 생필품도, 수입 요리 재료도 주문하면 그날 바로 오는 당일 배송의 짜릿함! 지하철도 너무 시원하고 쾌적해! 대중교통 짱이야! 거미줄처럼 촘촘한 버스노선과 환승 제도 최고오! 이런 날 보며 남자 친구는 애써 “제주는 공기가 좋잖아. 서울은 사람도 차도 너무 많고, 복잡하기만 하지.”라고 위로했지만, 이미 아이서울유 필터가 입혀진 망막 신경과 후각세포는 서울에 대한 험담을 뇌세포로 전달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서울은 미세먼지가 유난했다. 온도가 좀 포근해졌다 싶으면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렸고, 바람이 거세서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일 때나 겨우 파란 하늘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제주에는 미세먼지 영향이 덜 할 거라며 제주 이주를 격려했지만, 나는 오염공기 저항감(?)이 무딘 편이라 미세먼지도 견딜 만했다. 뾰로롱! 뽀샤시 필터의 두 번째 증거로 내 눈엔 미세먼지가 안보였다. 얼음장같이 추운 것보다 미세먼지가 나았고, 스모그는 도시 문명과 불가분의 관계라며 의식의 흐름에서 필터링되지 않은 말을 마구 뱉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은 미세먼지에도 해당되는 게 아닐까?” 아무 말 대잔치의 향연이었다. 그만큼, 나는 서울병이 나날이 심각해졌다. 지저분한 골목의 네온사인도 갑자기 뾰로롱! 홍콩 침사추이 뒷골목처럼 알록달록 해 보였고, 복작복작한 강남대로마저도 뾰로롱!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맛집과 힙한 술집과 최신 유행이 집결한 옷가게와 그 옆에 또다시 맛집으로 얽힌 선진 문물의 최전방으로 보였다. 빌딩 숲 아름다워! 매캐한 연기와 어디에나 가득가득 누군가의 어깨를 치지 않고 앞을 걸을 수 없는 만원 거리 너무 좋아! 멋모르고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정체불명의 가스를 자발적으로 들이마시던 천둥벌거숭이 어린 시절처럼, 도시의 매연을 따라다니며 들이마실 기세로 살았다.
제주에 내려오기 전, 나는 강남에서 자취생활을 2년 정도 했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60만 원의 월세도 비싸지만, 생활비, 세금, 전기세와 수도료 등등까지 내고 나면 아주 얕은 월급 가운데 굵직한 뿌리와 밑동이 한 번에 뽑혀나간 기분이었다. 월세를 내고 나면 안 그래도 크지 않은 월급이 더욱 작고 조그매서 귀여워졌다. 게다가 나는 강북 토박이인지라, 강남이 영 적응이 안됐다. 월세는 비싸면서 주변에 공원도 없고, 상가와 오피스 건물만 빼곡하고. 교통은 물론 아주 좋고 상업시설도 주변에 많지만, 유흥업소도 그만큼 많았다. 강남대로는 날이 좋으나 궂으나 사람이 많았고, 엄청난 맛집이 아니어도 도시의 수요 자체가 많아 줄 서야 하는 일이 즐비했다.
그랬던 내가, 제주 살이의 운명을 앞두고 나니 강남을 대하는 태세가 전환됐다. 지난해 5월, 회사에서는 제주 살이 대비를 위한 1박 2일 워크숍을 보내줬다. 부동산도 가보고, 미리 주변 환경도 익히라는 좋은 뜻이었겠지만 ‘이제 너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닥치고 제주 이사 준비나 해’로 들렸다. 살 곳을 둘러보러 간 자에겐 제주의 아름다움보다 생활의 불편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습하고 습해서 제습기가 집마다 한 대가 아니라 방마다 한 대씩 필수로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아직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차가 꼭 있어야 하고(장롱면허 10년인데;;), 우리 회사는 제주시도 아니고 서귀포시라서 공항에서도 1시간 넘게 차로 가야 하고, 큰 병원은 한 손에 꼽을 만큼 별로 없고, 친환경적이란 다른 말로 벌레가 많다는 뜻이라는 등등.
그날 중산간 도로를 지날 때 산 중턱의 풍경이 꼭 내 마음 상태 같았다. 안개가 뿌옇게 끼고 흐려서 착잡했다. 5일 만에 서울에 왔을 때, 공항버스를 타고 지나가던 강남대로가 과장 조금 보태서 정말 SF 공상과학영화의 미래 세계 같았다. 옛날에 홍콩이 동양의 뉴욕이었다는데, 내겐 그날 밤 강남대로가 번쩍번쩍하고 으리으리한 게 뉴욕 매디슨 스퀘어나 퓝스 5th 에비뉴 저리 가라였다. 매주 쇼핑몰을 방앗간 참새처럼 드나들던 내가, 백화점은 원래 백 바퀴를 돌아야 하는 곳이라던 내가, 청정한 섬에서 잘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어느 날 칼퇴를 하고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힘든 운동은 싫으니까) 집에서부터 한강까지 걸어 간 적이 있다. 1시간 정도 걸어 한강에 도착했을 때 다시 느꼈다. 아,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찬란한 불빛! 아아, 근대화의 상징! 피크닉도 할 수 있고 삼삼오오 서울 사람들이 모여 맥주와 치킨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 것도 보기 좋았다. 파리의 살롱문화가 재림한 듯했다. 서울병에서 나을 기미가 안보이자, 친구들이 “제주에는 바다가 있잖아~”라며 어설픈 위로를 시도했다. “얘들아. 원래 바다는 밤에 하나도 안 보여 ㅠㅠ”
한강은 도시 근린시설이라 가로등과 안전 경비대와 지구대, 시민들이 가득한 곳이다. 도시의 불빛이 한강변을 수놓아 낮에도 밤에도 각기 다른 운치를 뽐낸다. 하지만, 제주 밤바다는 어둡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한 여름의 해수욕장도 저녁 7시 이후에는 못 들어가는 곳이 많다는 걸 다들 알고 하시는 말인지. 친구님들아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저는 옛날 어르신들 말씀을 따르고 싶습니다만, 너무 늦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