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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4]  효리네 민박을 보기 싫은 속 좁은 애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4] 로망에 대하여: 효리네 민박을 보기 싫은 속 좁은 애


 회사에서 올해 안에 제주로 내려가겠다고 선언 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어느 날, <효리네 민박> 이 전파를 탔다. ‘제주 살이’를 전 국민적 로망이 되도록 활활 불을 지핀 장작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가 인기를 얻을수록, 나의 제주 이전을 효리네 민박인 줄 착각하는 주변 사람들이 있었다. 꼭 텔레비전 드라마랑 현실을 구분 못하는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있더니, 성인이 된 삶에도 그들은 여전히 존재했다. “어, 그럼 효리네 민박 봤어?”라며, 내가 살 제주 집에도 정원이 있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뇨, 저는 원룸(그것도 회사에서 구해준)이라 화분 한 개 들이기 어려운뎁쇼. “강아지 키우고, 바다 보고, 요가하면서 제주도 살면 진짜 좋겠다!” “나도 제주도 살아보고 싶더라”. 아뇨, 저는 노동자라 일하러 가는데요.


 보통 로망으로 그리는 제주 살이는 효리언니처럼 2층 집 또는 마당 너른 집에서, 꽃과 나무도 키우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뛰어다니며 한가로움을 즐기는 전원생활일 것이다. 새벽에는 요가를 하고, 남편과 차를 내려 마시고, 집안일을 하고, 식사를 차려먹고 석양을 보며 충만한 하루를 마감하는 삶. 취미로 음악을 하고 남편과 오순도순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도시와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삶을 누군들 꿈꾸지 않을까.


 제주 살이 로망의 핵심은 노동하지 않고 영위하는 삶에 있다. <효리네 민박>만 봐도,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 효리 언니가 손님을 맞으려고 준비하는 청소와 요리가 아니다. 손님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이른 새벽 홀로 갖는 명상시간, 손님들이 돌아가고 아이유와 바닷가에서 노닥거리는 시간들과 같은 쉼이 부럽다. 혹은 돈을 받지 않고 집의 방과 정원을 내어 손님을 받는, 임금과 무관한 노동을 할 수 있는 여유에 방점이 찍힌다. 우리의 일상은 보통 먹고살기 위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에 초첨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제주 한 달 살이에서 포인트는 ‘한 달’이다. 한 달에 노동은 계산되어 있지 않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하기도 애매한, 그래서 쉼의 한 달이다. 쉬고 노는데, 제주의 아름다움은 거들뿐이다.  한 달간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로망이다. 물론 공기 맑고 산세가 어우러진 자연환경이라면 더 환상적이겠지만.


 나는 통장 잔고를 먼지 날 때까지 탈탈 털어가며 여행을 다녀야 회사를 다니는 이유가 생기는 부류의 인간이다. 처음엔 여행을 가면 새로운 풍경과 낯섦, 모르는 나라와 사람들을 마주하며 세계관을 넓히고 배워가는 풍족함이 좋았다. 또는 바다를 바라보는 망중한과 같은 일상의 쉼표가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30대가 되고, 다른 각도로도 여행을 보게 됐는데, 여행의 미덕은 바로 소비와 무노동에서 나오는 거였다. 여름휴가를 가면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고, 무슨 체험을 하고 보느냐를 정하는 것인데 이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쓸까”의 다른 말이다. 여행은 생산이나 노동과 가장 반대되는 극단에 있는 행위였다. 소비하고 낭비하는 달콤함 때문에 그렇게나 즐겁다. 평소에 허락되지 않은 휘핑크림에 초콜릿 시럽과 헤이즐넛 드리즐까지 듬뿍 뿌려진 시간이랄까. 내가 가는 제주는 먹고살기 위한 ‘노동’때문이었으니, 로망의 제주생활과 내 제주 살이는 거리가 멀었다.


 <효리네 민박>을 고깝게 본 건 그런 같잖은 배 아픔 때문이다. 나는 제주에 내려가도 노동자인데 주변 사람들이 ‘효리네 민박처럼 살면 되겠네? 제주 살이 좋겠다’ 같은 속 모르는 말들을 자꾸 해댔기 때문이다. 서울에서도 석양은커녕 하늘 보는 날이 얼마 없는데, 제주에 간다고 그런 여유가 생길 것 같지 않다. 어차피 내가 월요일부터 금요일,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회사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으니까. 나를 포함한 싱글 직원들은 제주에 가면 짝을 찾는 일도 쉽지 않을 터였다. 이 얘기를 하면 오지라퍼들은 “다음카카오 직원 만나면 되지~” 따위의 속 모르는 소리를 줄줄이 소시지처럼 내뱉었다. “회사가 강남이야? 거기 삼성 타운 있잖아. 삼성 직원 만나면 되겠네”와 뭐가 다른 말인지 모르겠다. 미혼 남녀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 서울에서도 쉽지 않은 인연 찾기였다. 서울에서 인연 찾는 게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라면, 제주에서 인연 찾기는 서귀포 바다에서 맨몸으로 다금바리 잡기 같은 느낌이랄까.


 비뚤어진 십 대 같은 마음에 제대로 프로그램을 본 적은 없지만, 언니네 일상을 알면 알수록 제주 살이의 로망은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어 그렇지 않을 내 삶과 거리감을 확인하게 될 것 만 같았다. 로망과 일상의 간격을 메우며 살아내야 할 것은 온전히 나였으니, 속 좁은 마음에 혼자 삐져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효리네 민박은 시즌2까지 인기리에 방영됐고 나는 나만의 제주 로망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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