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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2] 제주 앓이와 유배 사이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2] 유배지로 각광받았던 제주


 제주 앓이는 한국에서 몇 년간 유행병처럼 퍼져나갔다. 단기 처방전은 제주 한 달 살기였다. 한동안 바쁘고 쫓기듯 살아야 하는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여유와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간증이 울려 퍼졌다. 나는 제주 앓이 대항 면역력이 얼마나 강한지 제주에 몇 차례 여행을 와도 제주 앓이에 전염되지 않았다. 여행으로, 쉬기 위해, 놀러 오는 제주와 일하러 이주를 해야 하는 제주의 간극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개 낀 창밖을 내다보는 느낌이다. 앞이 보이질 않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제주는 고려시대부터 사람보다는 말을 키우는 곳이었다. 조선시대부터는 본격 유배지로 각광받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제주 유배와 관련된 기록이 80여 회가 넘고 전체 유배인 700명 중 200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제주와 유배>에는 이런 문구도 나온다.


제주도가 유배지로 각광을 받은 이유는 첫째 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연유로 징벌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에서 제주를 가는 것은 죽음을 염두에 두고 가는 길이라 여겼으니 이만한 징벌적 유배지도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제주와 유배 (한국의 섬 - 제주도, 2017. 3. 15., 이재언)


 징벌적, 징벌적이 연달아 두 번 나온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주에 가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강조의 형용사로 그만한 표현이 없나 보다. 죽음을 각오하고 바다로 건너가는 사대부의 비장미까지는 내게 없었지만, 30년을 살아온 터전을 뒤로하고 비행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는 일이 유배인지 무엇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보물 같은 섬인데, 천혜의 자연환경의 섬으로 간다는데, 자꾸만 벌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9년의 제주 유배생활 동안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라는 명작을 남겼다. 나는 제주에 대해 비자발적 이주 일지를 쓰기로 했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열병은 식을 줄 모르고, 제주에서 집 짓고 살기 등 제주 생활에 대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이야기는 넘쳐난다. 도시를 사랑하고, 미세먼지까지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최대한 제주에 내려가기를 미루고 싶었던 도시 여자의 시선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웃프고 냉소적인 이주기를 쓰며 마음을 잡아보기로 했다. 어차피 친구도 쇼핑몰도 백화점도 없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유배지에 가면 책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정철의 사미인곡 시조는 임금을 사모하는 열렬한 연애편지를 써서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 임금이 계신 서울로 다시 불러달라고 은근히 대놓고 청원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유배문학이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 유배생활 동안 추사체를 완성하고 세한도라는 명작을 남겼다. 나는 제주에서 서울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서울에 대한 사랑을 꾹꾹 눌러 담은 기록을 남겨보기로 했다.


사미인곡은 이렇게 시조를 맺는다.


차라리 사라져 범나비가 되리라. 꽃나무 가지마다 간데 족족 않고 다니다가 향기 묻은 날개로 임의 옷에 옮으리라. 님이야 나인 줄 모르셔도, 나는 임을 따르려 하노라.


구구절절하다. 내 제주 일기는 더 구구절절하게 이렇게 시작하련다.

서울이야 내가 간 줄 모르셔도, 나는 족족 임을 떠올리려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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