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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1] 저는 제주도에 가고 싶지 않은데요

Ⅰ. 입도 전, 입도에 도전

[1] 제주로 이전하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제주도 이전 대상 기관입니다. 알고 계시죠?”


 때는 바야흐로 8년 전, 입사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몰랐는데요...?”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목소리 볼륨을 음소거로 전환했다. 그 자리에 있던 동기들은 이미 조사를 끝내 알고 있었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일단 망했다... 하필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회사가 제주도에 가는 회사라니, 사전에 충분히 알아보지 않은 게으른 스스로의 등짝에 강 스파이크를 내리꽂고 싶었다. 뒤이어, ‘그렇지만 제주도에 가기 전에는 이직을 하면 되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자괴감을 은근슬쩍 뭉개버렸다. 무엇보다 가장 믿고 싶었던 건 회사에는 아직 제주도에 땅 한 톨도, 예산도, 건물도, 구체적인 청사진도 없다는 현실적 어려움이었다. 굴지의 대기업이 글로벌 리더십으로 진두지휘해도 사옥을 지어 이사하는 것도 빨라야 몇 년이 걸린다. 제주 이전이라는 게 그렇게 쉬울 리가 없지, 참나. 내 이직이 빠른지, 회사의 제주행이 빠른지 어디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그때만 해도, 멀쩡히 서울에 있던 회사가 조만간 제주도로 옮긴다는 생각은 자메이카의 첫 동계올림픽 봅슬레이 팀 선발전처럼 허무맹랑해 보였다. 정부 정책으로 우리 회사가 제주도에 간다는 것만 정해졌을 뿐, 이전 부지가 서귀포인지 제주시인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직원들의 주거 지원과 복지제도, 동반 가족들에 대한 이전 계획, 어떤 부서가 서울에 잔류하고 몇 명이 남는가에 대한 구조조정 등 걱정은 산더미인데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엔 청사진도 재원도 아무것도 없는 날들이었다. 직원들에게는 사택을 제공할 것인지, 급여 인상이나 제도 개선을 통한 직원 유인책이 있는지, 제주 이전 이후에 우수한 신입직원들을 어떻게 계속 선발할 수 있을지, 정확히 내려갈 시점은 언제인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단계였다. 매년 양장 고급 가죽 다이어리를 새로 장만하고 신중을 기해 올해 계획을 수차례 세워본 경험에 비춰보건대, 계획이란 그렇게 쉽사리 실현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제주 이전은 불가능하다. 안일한 희망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꺼지지 않는 성화처럼 활활 타올라서 서울에 회사가 서울에 남아있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제주 이전은 조금씩 구체화되어 서귀포에 사옥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됐다. 진짜 불가능했던 것은 자메이카 봅슬레이 팀의 올림픽 진출도 아니고, 우리나라 여자 대표팀의 컬링 은메달도 아니고, 나의 이직뿐이었다. 어이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7년 차 직원이었다. 어라, 정신을 차려보니 제주 사택 후보지를 보러 출장을 가고 있었다. 입사 오리엔테이션 때 고개를 끄덕이던 동기들은 대부분 엑소더스에 성공한 반면 나는 2017년 여름, 제주도 이전 행렬에 선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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