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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13. 2020

[제주일기 10] 입도 첫날, 감자전에 백전백패

Ⅱ. 제주 살이 시작: 내 몫의 바다를 배우는 제주의 여름

[10] 입도 첫날, 감자전에 백전백패

 

제주로 이사 가는 날, 이라고 쓰고 ‘입도’라고 읽는다.


 그날은 바로 2018년 7월 10일, 화요일. 화창한 날이었다. 공기마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엄마와 전날 저녁에 집 근처 쇼핑몰에서 이불과 잡다구리 한 생활용품들을 잔뜩 사서 제주에 살러 갈 마지막 짐을 점검했다. 엄마는 서른셋이나 먹은 다 큰 딸내미의 짐 정리를 도와주기 위해, 1박 2일 제주 동행에 선뜻 나섰다. 엄마는 제주도에 가니 놀러 가는 기분이었는지 한껏 아이처럼 설레 보였다. (내가 미리 보낸 20 상자가 넘는 이삿짐 더미를 다 풀고 정리해야 되는 줄도 모르고... 쯧쯧) 사실, 내가 비행기 표 사 줄 테니 제주도 집이랑 바다 구경 겸 (그리고 일하러) 오라고 사탕으로 어린아이를 꾀듯 구슬렸고 엄마는 흔쾌히 따라나섰다.


 아침 9시 15분 비행기. 제주행 비행기가 으레 그렇듯이 10분 정도 딜레이 되었다가 탑승을 시작했다. 하늘은 내 마음도 모르고 맑고 투명하고 화창했다. 승객들 모두 탑승을 마쳤는데, 비행기가 활주로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탑승 준비를 마쳤으나, 비행기 기술 점검 때문에 기다려달라는 방송이 나왔다. 비도 안 오고 바람 한 점 없는 여름날인데, 기술 점검이라니 마음이 불안함에 요동쳤다. 1시간 가까이 딜레이 된 비행기는 겨우 공항을 빠져나왔고, 앞으로 ‘입도’ 생활을 예견하는 복선일까 이 ‘육지 것’의 마음은 불길했다.


 제주 이주를 준비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입도’와 ‘출도’다. 입국, 출국은 자주 들어봤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입항’과 ‘출항’, ‘입산’, 부처님의 ‘출가’ 까지는 여행 다니며 들어 봤는데, 입도라니. 홍길동전에서 “암행어사 출두요”는 들어봤어요, 출도 라니.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입국이라고 한다면, 섬에 들어오는 것은 입도라고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상식이었지만, 평소에 서울에 살면서 생각해 볼 일 없는 개념이었다.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도시생활과 주변 환경을 당연한 프레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육지를 떠나며 들었다.


 몸은 제주공항에 도착했지만 서울에 두고 온 마음이 아직 오지 않아서인지, 제주 공항에 내려서도 집까지 가는 길이 더뎠다. 네이버 지도 앱에서 중문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가 ‘20분 뒤 도착’이라고 분명히 빨간색으로 떠 있었는데, 20분이 지나도 코빼기 하나 비치지 않았고 결국 정류장에서 40분이 지나고야 버스가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1분 단위로 정확하던 네이버 지도 앱의 제주 사용에 대해 처음으로 의구심이 든 날이기도 했다. 50여분 정도 산을 가로질러 집 근처에 도착했다. 회사에서 구입한 사택 중, 내가 선택한 집은 중문에 위치했다.  엄마는 여기에 “약국도 있고, 파리바게트랑 배스킨라빈스도 있네. 어머 여기가 번화가인가 보다~”라고 또 한 치 앞을 모를 말을 했다.


 아늑하고 포근하고 없는 것이 없이 풍족한 부모님 집에서 출발한 지 어언 5시간 반 만에 도착한 중문 사택은 다행히 내 마음에도, 엄마 마음에도 꽤 드는 곳이었다. 예산이 부족해서 오션뷰가 아니라 ‘한라산 뷰’로 회사에서 매입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9~10평 정도 규모에 침대도 퀸사이즈로 아주 컸다. 앉아 보니 물컹하고 폭신한 게 물침대인가 했건만, 그냥 스프링이 힘이 없는 침대였다. 수납공간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답답하지 않게 소꿉놀이하는 재미로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과 달리, 제주는 물건이 없으면 근처에 사러 나가기도 차가 없으면 쉽지 않다. 배송도 오래 걸리고 가전 가구는 추가 요금까지 어마 무시해서, 서울에서 이것저것 쟁여서 왔더니 상자가 우체국 택배 상자 제일 큰 것 기준으로 10개, 작은 사과상자 크기로 5개, 주방용품 등은 바구니로 옮겨서 3개, 가구와 전자제품 등등해서 총 20개의 짐이 서울에서 와 있었다. 가구와 선반, 냉장고 구석구석을 닦고 옷들을 개고 걸고, 버리고 또 쌓고 했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섯 시간 즈음이 지나자 옷과 큰 물건들은 대충 수납장 속에 들어갔고, 자잘한 양념과 주방 조리도구들과 세세한 소품들이 너저분하게 나와 있었다. 엄마는 내일 저녁이면 육지로 돌아가야 했기에, 정리 노동은 그쯤에서 정리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바다를 보러 나갔다.


 바닷가 구경도 하며 기분전환을 하고 엄마가 먹고 싶다는 통 갈치조림을 먹으러 갔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두 개를 이어 붙여 두 마리의 갈치를 맛있게 조려주는 집이었다. 전복과 문어, 떡도 들어가서 매콤 달콤하니 아주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갈치를 먹으면서 아빠랑 동생도 오면 좋아하겠다고, 다음엔 같이 오자고 서로 몇 번이나 말했다. 엄마랑 홍삼 진액을 둘이 한 포씩 노나 먹고 피곤에 지쳐 잠들었다.

 

감자전에 백전백패


 입도 둘째 날, 7월 11일(수) 아침. 부지런한 우리 어머니는 7시 반에도 내가 한창 꿈나라에 취해 있을 때, 일찌감치 일어나 계란 프라이에 식빵을 굽고 커피를 준비하고 계셨다. “뭐양~ 역시 엄마 짱이야” 버터 향을 킁킁 거리며 기분 좋게 일어나 씻고 엄마와 잼에 토스트를 나눠먹었다.


 나는 부모님 집을 ‘젖과 꿀이 흐르는 우리 집’이라고 불렀다. 거실 테이블에는 늘 삶은 감자나 고구마, 과일이 에덴동산처럼 흐드러지게 있었다.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다 손을 뻗으면 삶은 구황 장물이 손에 닿았고, 오른쪽으로 한 바퀴 굴러 손을 뻗으면 각종 견과류가 있었다. 몸을 일으켜 몇 걸음만 가면 식탁 위에는 예쁘게 손질된 사과나 귤 같은 과일이 늘 있었다. 왼쪽으로 구르던 오른쪽으로 구르던 종착지는 먹을 것이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냉장고에는 소고기부터 제철 해산물까지 그득그득했다. 게다가 내가 먹고 싶다고 뿅 하고 말하면 엄마는 ‘뚝딱’하고 채려 주곤 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을 뻗으면 허공에 저어도 먹을 것이 잡혔다. 혼자 살면서 이것저것 요리도 해 먹어 봤지만, 엄마가 제공해주는 집밥의 온기와 안락함은 어디 비할게 아니었다. 부모님 집엔 정말로, 표현 그대로 먹을 것이 풍부하고 또 넘쳐났다.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가면 늦잠을 자도 아침식사로 직접 두 번 튀겨서 만든 수제 감자튀김에 데운 야채와 내린 커피가 뚝딱 나왔다. 점심에는 영양 가득 잡곡밥에 메인 요리는 칼칼한 병어조림이었는데, 특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듬성듬성 큼직하게 썰어져 오랫동안 졸인 무가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생선 조림에 들어가 있는 무 보다 ‘무심한 듯 시크하다’는 더 어울리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소고기 계란 장조림과 참기름에 고소하게 무친 미나리나물 따위는 여러 사이드 접시 중 하나였다. 국은 또 따로 나왔다. 배추 된장국이나 소고기 미역국, 오징어 뭇국처럼 국만 먹어도 밥 한 그릇 맛있게 끝낼 수 있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으면, 사과와 복숭아, 여름엔 수박과 체리가 한 무더기로 상에 올라왔다. 식사가 끝나면 있는 자리에서 그대로 배 뚜드리며 등을 90도에서 120도, 180도로 제치며 스르르 자체 리클라이너 모드로 드러누우면 되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곳이었다.


 혼자 살면서 해먹기도 어렵고 사 먹기도 쉽지 않은데 자꾸 생각나는 요리가 있었다. 바로 감자전이었다. 엄마는 감자를 강판에 서걱서걱 직접 다 갈아서 물을 빼고, 100프로 국산 감자로만 전을 부쳐주셨다. 파는 감자전은 감자에 밀가루나 부침가루를 섞은 맛이 많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감자전은 감자를 한 참이나 갈아야 하고 노력과 시간에 비해 수지가 남지 않는 장사다. 100프로 감자로만 만든 감자전만 먹고 자란 혀는 안다. 시중에 진짜 감자전은 찾기 힘들다는 걸. 하지만 엄마 집에 가면 식전에 애피타이저처럼,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처럼 잘도 나온다. “엄마 나 배불러~ 더는 못 먹어”라고 항복을 선언하고, “아니 네가 좋아해서 이렇게 많이 갈아 놨는데 어떡해. 하나만 더 먹어”하면 다시 백기를 철회했다가 정말로 배가 터질 것 같을 때 바닥에 드러누우며 풍선같이 부푼 배를 까 뒤집어 보이고 패배를 선언할 때까지 먹을 수 있었다. 엄마는 한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부엌까지 잘 닿지도 않는 데도 그렇게 몇 점의 감자전을 부쳐서 내주었다. 그 앞에서 나는 언제나 백전백패였다.   


 입도 둘째 날은 휴가를 더 이상 쓸 수가 없어,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회사에 온 짐들도 정리하고, 내 자리도 정리해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제주에서 하루 혼자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제주에서의 첫 출근 날은 당연히 정신이 없었다. 컴퓨터도 연결이 안 되어 있고, 공사도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화장실은 있는데 휴지와 휴지통이 없었다. 예고 없이 단수가 되기도 했다. (인간적으로 단수 때문에 화장실을 못 가면, 집에 보내줘야 되는 거 아닌가-궁시렁) 도착한 사무실 짐들을 풀고, 책상을 닦고, 가끔은 또 창문 멀리 보이는 바다를 멍하니 봤다. 동료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면서도 “남의 회사에 잠깐 출장 온 것 같아요~ ”하면서 또 남의 일처럼 웃어댔다. 하하호호.


 업무를 시작한 건 아니라 바쁘진 않으면서도 산만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엄마가 남긴 편지가 있었다. 오늘 하루는 카페에도 가고, 바다도 좀 더 보고 놀다 올라가라고 했건만, 엄마는 잡동사니도 다 정리하고 빨래도 두 번이나 돌려서 이불과 속옷들도 다 널어놓고 마트에서 장까지 봐다 놓고 가신 거였다. 비어있던 냉장고가 망고주스, 키위 한 상자, 돼지고기 한 근, 아보카도, 구운 계란 등등으로 가득 차있었다. 엄마는 돼지고기로 김치찌개까지 만들어 두려다 딸내미가 극구 말리는 바람에 그건 하지 않으셨다. 아, 진짜 엄마 못살아. 고작 이틀 내려와 있는 와중에, 온전히 나를 위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돌아가는 사람이라니.


엄마, 제발 건강해. 오래오래.

나는 엄마의 감자전에 언제라도 백전백패하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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