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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27. 2020

[제주일기 11] 제주살이 적응하는 첫 일주일

Ⅱ. 제주 살이 시작: 내 몫의 바다를 배우는 제주의 여름

[11] 제주살이 적응하는 첫 일주일

 

 첫 일주일은 뭐가 뭔지 두리번거리며 적응하는 시간이었다. 서귀포 사무실에서도 똑같이 업무 회의는 열렸고, 책상은 달라졌지만 예전과 같이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드리고, 이메일을 쓰고, 전화를 하는 건 그대로였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 창 밖에 멀리 파란 바다를 봤고, 회사 문 앞부터 야자수가 가로수마냥 심어져 있었지만 사무실 내 자리에서는 그러니까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최소한 서울의 생활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실감이 잘 안 났다. 외국도 아닌데, 비행기를 타고 와야만 하는 곳. 남의 회사에 파견 나온 것 같기도 했고, 잠깐 출장을 온 것 같았다. 


 새로운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 시켜주는 쪽은 오히려 생활의 불편함이었다. 도보로 이동해서 갈 수 있는 범위 내에는 큰 마트나 병원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식당만큼이나 카페가 많았는데, 발에 차이는 게 프랜차이즈 카페였는데 이곳은 선택지가 별로 없어서 커피 중독자에게는 또 다른 난관이었다. 식당까지도 꽤 걸어야 했고, 식당과 식당 사이도 간격이 꽤 있었다. 그럴 땐 또 제주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퇴근 후 집에 있으면, 여기가 제주인가 서울인가 또 별 차이가 없었다. 집 앞에서 퇴근 후에 운동을 하려고 헬스장을 찾아봤다.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하나도 없었다. 가격과 시설을 비교할 건덕지가 없었다. 강남에서는 집 앞이냐 집 앞 앞이냐, 집 뒤냐를 고민하고 가격을 비교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선 헬스를 하러 가려면 운전을 해야 했는데, 걸어서 코  앞에 있는 곳도 힘든데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는 건 완전히 무리였다. 여긴 올리브영도, 다이소도, 이마트도, 옷가지를 사려고 해도 차를 가지고 나가야 했다. 차가 없어 생기는 행동의 제약과 반경이 좁아질 때마다 제주의 삶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상기됐다.


 제주에 처음 도착한 뒤, 첫 일주일 동안은 퇴근 후 계속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거나 정리하면서 생각난 물건들을 사러 다녔다. 금요일에 퇴근하면 바로 공항으로 간다. 주말을 서울에서 보내고, 일요일 오후 비행기로 제주에 다시 돌아온다. 반복되면 나의 귀환이 완료되는 곳은 서울인가, 제주인가 물음표가 솟는다. 

 

쓰레기는 어디다 버려요음식물 쓰레기는 제 뱃속에 버릴게요?

 제주에 도착하고 짐을 풀자마자 가장 당혹스러운 점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건물 안에 없다는 점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쓰레기를 버리는 시설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10층이 되는 규모인데도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없었다! 심지어 재활용품은 버리는 요일이 지정되어 있어,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점입가경, 음식물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도 없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 가서, 무게만큼 티머니 카드로 결제를 해야 버릴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나 친환경적인 시스템이 제주에 있다니! 감탄스러워서 엉엉 울고 싶었다.  


 이삿짐을 스무 상자나 보낸 욕심쟁이에게는 빈 상자만 20개가 나왔다. 그 외에도 각종 비닐 뽁뽁이로 빈틈없이 싼 포장재도 모두 버릴 것들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재활용 도움센터(=쓰레기 버릴 수 있는 곳)는 도보로 5~7분은 가야 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기 싫어서 뱃속으로 보내게 생긴 셈이다. 재활용 도움센터에는 지킴이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가 항상 상주하고 계신다. 그래서 나 같이 쪼렙으로 보이는 애들이 쓰레기를 이고 지고 오면, 혹시나 종이 쓰레기를 플라스틱에다가 버리는 멍청이 짓을 할까 봐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날카로운 눈으로 관리감독을 하신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기계도 있고, 꽤 체계화되어서 플라스틱과 비닐, 일반 쓰레기 등을 나누어 버리게 되어 있다. 관리하는 분이 상주해 있으니 냄새도 거의 나지 않고 청결하다. 어르신들 일자리도 생기고 환경도 생각하고, 일석 이조였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불편한 시스템이냐고 입이 댓발 나왔다. 재활용센터로 가는 길이 어두워서 꼭 2인 1조로 짝을 지어 가야 했고, ‘적당히’가 안 되는 게 못마땅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왜 그렇게까지 제주는 환경을 신경 써야 하는지.

 

백화점에 가지 못하는 자이마트로 갑니다.

 제주시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모를 것이다. 거기엔 쇼핑을 할만한, 그러니까 옷을 살만한 브랜드들(유니클로와 같이)이 입점해있다. 반면 인구도 제주시의 3분의 1 정도고, 개발이 더딘 서귀포를 대표할 만한 쇼핑 플레이스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이마트다. 쓰고 보니 찔끔 나는 눈물을 닦자.


 제주도에 내려온 바로 다음 날에도 이마트에 갔지만, 일주일이 지난 토요일 저녁 8시쯤 친한 회사 동료들과 이마트로 향했다. 모든 코너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필요한 아이템이 없는지 찬찬히 둘러볼 계획이었다. 쇼핑 중에 으뜸은 마트 구경이라고 입을 모으는 여직원들 셋이 가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두 시간 반이 지나있었고, 영수증에는 줄줄이 소시지처럼 산 물건들 가격이 10만 원이 넘었고, 남자 선배들은 마트에 그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 있는지 의아했고, 나는 직감했다. 이곳이 우리의 백화점을 대체할 곳임을. 모든 마트는 규격에 따라 획일적으로 디스플레이가 되어있다. 마트는 서울에서도 제주에서도 같은 동선과 디스플레이 방식으로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우리는 그 획일적인 느낌을 사랑하게 되었고, 백화점에 가지 못하는 텅 빈 마음을 이곳에서 한동안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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