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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pr 27. 2020

[제주일기 13] 우리만 재밌는 제주에 서울 별명 붙이

고개를 갸우뚱 하긴

 무릇 관계가 가까워지는 남녀 사이라면 애칭 하나쯤 생기기 마련이다. 회사 동료들 사이에 주로 가는 서귀포 동네에 서울 지명을 별명으로 붙여주는 재미가 들렸다. 제주와 우리 사이의 관계도 조금은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기보다, 갈피 잃은 마음을 그렇게라도 정착시켜보려는 시도에 가까웠다. 가령 서귀포에는 월드컵경기장이 하나 있다. 바로 옆에는 대형마트도 있고, 월드컵 경기장 안에는 서귀포 유일무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단 하나의 영화관도 있어서 우리는 잠실 축구경기장을 본 따 이곳을 잠실이라고 불렀다. “오늘 점심 어디서 먹었어?”라고 물어보면 “잠실 갔다 왔지~”라는 실없는 대화였지만, 우리끼리는 키득키득 대며 제주에 귤 하나만큼의 유대감이 생겼다.


 신시가지에 나름 서귀포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 있다. 제주는 발렛은커녕 주차요원도 거의 없고, 아파트나 상가에서도 주차 관리를 하는 곳이 많지 않은데 여기는 차량등록을 해야만 출입이 되는 시스템이다. 또 파리바게트와 베스킨 라빈스, 피트니스 클럽, 무려 올리브영과 마트까지 지근거리에 있다. 읍내 중의 읍내인 것이다. 게다가 무려 네일숍은 두 개나 인근에 있고, 제주에서 많지 않은 체인 쌀 국숫집과 에스테틱도 있다. 처음엔 이곳을 ‘청담동’이라고 청담에서 30년 넘게 살았던 선배가 명명했다. 그녀가 그렇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지. 나중에는 어느새 인가 분당으로 별명이 바뀌어있었지만.


 중문 우체국 근방에 내가 사는 동네는 서귀포의 명동이라 불린다고 한다. 제주 살이 10년 된 분에게 들었다. 우체국, 소방서, 관광 단지도 근처에 있고, 식당과 주점도 있고, 당연히 관광객도 많다 보니 명동이라 부른다는데,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다. 길거리가 미어터질 일도 없고, 쇼핑몰도, 길거리 노점이라고는 붕어빵 집 하나가 온 동네를 독과점하고 있는데 명동이 섭섭할 것 같았다. 적당한 별명을 고민하다 교통이 편리하고 술집도 나름 많은 동네이니 왕십리정도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나중에 한창 왕십리 좀 다녀본 친구가, 고개를 갸우뚱 하긴 했지만. 


 안다. 육지 것들의 서울 중심적 사고라는 것을. 하지만 제주의 행정구역을 잘 모를 때였다. 서귀포에는 중문과 신시가지 정도만 있는 줄 띄엄띄엄 생각하다 제주의 넓은 땅 속 다양한 상가와 마을을 마주하니, 동네 동네마다 뭐라 불러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원래 연인의 애칭은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뭐 이런 근본 없고 무 논리의 어이없는 이름이 있나 싶은 법이다. 다 큰 여자 친구를 왜 애기라고 부르는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알면서도 모르고 싶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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