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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Nov 15. 2023

거믄여 “터가 세다”는 말을 톺아보다

 

“제주에서 가장 좋은 곳이 어디예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거침없이 대답한다.

“올레 7코스요. 바쁘면 외돌개 주차장에 차 대고, 황우지해안부터 돔베낭골까지라도 걸어보세요. 아직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다음 추천할 수 있는 길이 이곳이다. 허니문 하우스 주차장에 주차하고, 소정방폭포에서 거믄여 활터까지 걷는 길. 올레 6코스. 1.5km. 25분. 서귀포다운 해안 길이다. 7코스만큼 다듬어지지 않아 더 자연스럽다.      


한라산 꼭대기에 눈이 쌓였다. 눈이 시원해지는 그 풍경을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볼 수 있다.


유래     


‘거믄여’는 검은 돌이 해안가에 툭 튀어나왔다는 뜻이다. 이 돌들은 화산폭발로 용암이 해안까지 흘러 내려와 식은 화산암이다. ‘여’는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는 보이지 않는 물속에 잠긴 바위이다.     


우리 부부는 예전에 ‘검은여(거믄여)’는 터가 세서 해 질 무렵이나 새벽에 무당들이 굿하는 곳이란 말을 들었다. 그 말 때문인지, 그 거무스름한 돌들 때문인지 흐린 날 가면 마음이 거뭇해졌다. 지난 주말 화창한 오전에 사진 찍으러 갔다. 터에 얽힌 얘기는 온데간데없이, 가을 햇빛이 바다를 온통 은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온 동네에 넘치게 찬란한 햇볕에 어두운 기운은 없었다.      


서귀포 토박이들에게 물었다.

“거믄여가 터가 세다는 말 들은 적 있으세요? 그 말의 유래를 알고 싶어요.”

여러 토박이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들은 사람도 있어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믄여의 동쪽엔 용천수가 콸콸 나오는 곳이 있다. 그리고 맞은편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그곳은 토박이들이 ‘흰 동산’이라 부르는 낚시 포인트이다. 검은 돌들과는 달리 바위가 하얘서 그렇게 부른단다.  아기를 낳으면 그 흰 동산에서 치성을 드렸다.   


많은 자료와 이야기를 종합해서 추론해 보았다.    

 

아마도 이곳에서 물을 구할 수 있어서, 그리고 바람을 가릴 만한 바위 그늘이 있어서 옛날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새벽녘에 남몰래 와 가족의 안녕을 기원했다. 아기를 낳으면 액막이굿도 했다. 거믄여의 당(堂)은 일반적인 신당(神堂)처럼 딱히 정해진 장소가 없고, 바위틈에 촛불을 밝히고 기도하고, 그 후 제물로 바쳤던 음식을 조금씩 떼어 백지에 싸서 바다 멀리 내던졌다. 바위틈에는 기도의 흔적, 수십 개 촛불의 흔적이 남았다.      


토박이 한 분은 말했다.

“터가 세믄 칼호텔이 거기 들어갑니까?”

흐린 날 거믄여의 넓게 바당(바다의 제주어)으로 펼쳐진 검은 바위들이 귀기스러운 두려움을 줄 때도 있었다. 이렇게 자연과 풍속이 합해져서 ‘터가 세다’는 말을 낳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맛집과 카페숙소     


1. 서귀포 칼호텔     

10년도 더 전에 서귀포를 찾으면, 서귀포 칼호텔에서 잤다. 오래된 호텔이라 내부는 낡았지만, 정원과 잔디밭, 온실과 산책로, 그리고 방에서 보이는 경치가 워낙 빼어나서 룸 컨디션에 앞섰다. 선택은 고객의 몫이다. 

    

이주한 이후에도 칼호텔은 워낙 좋아해서, 여름엔 야외 BBQ 식당을 예약해서 서울에서 내려온 제자들과 파티하기도 했고, 호텔 프런트 옆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가족끼리 주말 저녁을 보내기도 했다.        

  

2. 허니문 하우스     

허니문하우스의 카톡 프로필에서 가져왔다. ^^ 주문하면 카톡으로 알려준다.


얼마나 많은 추억이 있는 공간인지. 20여 년 전까지 제주는 내게 휴식의 땅이었다.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혼자 바람처럼 다닐 수 있는 자유로운 땅. 제주시에 있던 엄마 집에 도착하면 바로 차 몰고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왔다. 그러려고 내가 타던 낡은 에스페로를 갖다 두었다. 허니문 하우스의 사우나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목욕하고,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돌아왔다. 자유의 증거는 그것으로 족했다. 


그리고 엄마가 제주시 연동에 건물 짓고 식당을 개업하면서, 우리는 허니문 하우스의 실내 디자인을 참고했다.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가서 일부를 식당 일 층에 살렸다.     


 서귀포로 이사 와서 문 닫힌 그 동네를 걸으며 담 안을 그리워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허니문하우스가 18년 11월 27일 카페 문을 다시 열었다. 가장 먼저 달려가서 축하해 주었다. 매주 가서 꽤 비싼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기도 했다. 그때 이미 이곳은 명소가 될 것이라 알았는데, 그 시기가 지나치게 빨랐다. 1년이 지나지 않아 사람이 넘쳐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이곳에 가보지 못한 분은 서귀포에 오면 허니문 하우스 카페의 야외 좌석에 앉아 바다와 바람과 햇볕을 즐겨보시기 바란다.     


3. 청재설헌

제주에는 몇천 평 정원을 가진 분들이 있다. ‘베케’ 같은 카페도 있지만, 상업적 공간이 아닌 개인 주택에 속한 그 정원들을 가볼 기회가 있었다. 토평에 있는 청재설헌은 주인아주머니 홀로 몇십 년을 가꾸어 온 정원이고,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B&B에 숙박하면 정원을 누려볼 수 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힘이 어디까지인가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정원이다. 건강한 조식까지 맛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자신을 돌아보며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4. 제주 봄카페와 제주봄스테이     

멀리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카페에서 보이는 풍광과 실내외 분위기가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몇 년 전에는 주인 부부가 직접 서비스해주셨다. 그분들의 손길이 담긴 브런치가 훈훈했었는데, 지금의 맛은 모른다. 미술관도 있고, 가성비 좋은 숙소도 있으니 조용한 곳을 찾는 분들에게 맞는 숙소일 것이다.

  

        



왈종미술관     


정방폭포 입구 건너편에는 이왈종화백의 개인미술관이 있다. 전체 넓이 300평 규모의 3층 건물로, 조선백자의 찻잔을 조형화한 모습이다. 서울의 메이필드호텔은 우리 부부가 서울에 가면 묵는 곳이다. 그 호텔의 로비에 왈종의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의 그림에는 보다 보면 은근히 웃음이 배어 나오는 해학이 있다. 자연과 더불어 미술관에도 들러서 천천히 그림 구경 해도 좋을 것이다. 미술관 3층에서 바라보는 끝내주는 섶섬 풍경은 훌륭한 덤이다.      




나는 나를 소개할 때 “서귀포에 삽니다.”하고 말한다. “제주도에 살아요.”가 아니다. 그만큼 서귀포에 사는 것에 만족과 자부심을 느낀다. 


* 토박이들에게 일일이 전화해서 알아봐 주신 이석창 박사님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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