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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Dec 22. 2023

제주 중산간 폭설! 고독하니 좋구만

   

어제 아침, 일어나니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눈 뜨자마자 아침 일찍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출근하는 남편에게 전화하니, 거실에서 답이 온다.

“아직 출근 못 했어요.”

일기예보와 CCTV를 찾아보던 남편은 오늘 꼭 출근해야 한다며 통제된 성판악을 버리고, 평화로로 가야겠다고 집을 나섰다.

“잠깐! 당신 오늘 집에 돌아오지 말고 제주시에서 자요.”

차 위에 쌓인 눈을 털고 있던 남편은 다시 들어와 외박할 준비 하고 나섰다. 한 시간 거리의 출근길, 살살 속도 낮춰 갔더니 한 시간 반 걸렸단다. 그리고 어제는 제주시 호텔에서 잤다. 겨울마다 한두 번쯤 있는 일이다.   


  

22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24일 내일 오전까지 제주 전 지역에 내린다. 눈은 정말 지치지 않고 내렸다. 잠시 새소리가 들리고 바깥이 환해지나 싶다가, 다시 펑펑 온 천지가 하얗게 내리고 있다.    

  

“저희 집이 중산간 비탈에 있어 제 차가 내려가지 못합니다. 오늘과 내일은 수업 안 하고 집에 있을게요.”

어제 아침, 수업과 미장원 예약 등 이틀간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1박 2일간 우리 집 리조트에 혼자 묵을 생각에 만세 불렀다. 마침 나는 몸과 마음이 무척 지쳐 있었다.     


화요일에 출발하여 수요일 서울에서 돌아왔다. 이번 여행은 춥고 길도 얼어 있을 거라 캐리어를 갖고 가지 않고, 배낭만 멨다. 워낙 여행 짐이 단출한 편이다. 딱 필요한 옷가지와 하루 쓸 세면도구와 화장품만 챙긴다. 단지 이번에는 수요일에 브런치 연재 글을 올려야 해서 노트북과 충전기가 더해졌다. 800g짜리 초경량 노트북이지만, 여행짐에 노트북과 충전기까지 더해지니 짐이 무거웠다. 그래도 연재는 나와의 약속이라 꼭 지키고 싶었다.     


배낭 메고 만 보 이상 서울 길을 걷기는 힘겨웠다. 춥다고 해서 두둑한 겉옷까지 입은 참이었다. 제주 공항 혼잡으로 비행기까지 30분 상공을 선회하다 착륙했다. 집에 돌아오니 지쳐 빠져 술 두 잔을 마시고 나니 비로소 몸과 신경이 풀어졌다. 그런 참이라 예정된 폭설은 충분한 휴식 시간을 줄 것이라 반갑기 짝이 없었다.  

   

이번 휴가는 새해에 연재를 마치고 나면, 또 다른 글을 쓰려고 목차와 제목을 정하고 초안을 잡기로 했다. 방학에는 더 바쁘니, 미리 반쯤 작업해두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어제 종일 글도 쓰다, 수업 준비도 하다, 책도 본다. 집안에서 만 보 걷고, 드라마 보면서 쉬기도 했다. 햇빛을 받지 않고 걸으면, 밤에 잠이 잘 안 오는 게 흠이다. 하지만 필요했던 시간이라 달게 하루를 누렸다. 가끔 가족과 안부 문자를 나누기도 하며, 종일 말 안 하고 지내는 고독한 시간은 내 안에 충만함을 준다.  



   

집 정원과 정문 주차장에 쌓인 눈


텃밭의 배추와 무, 어린 파들이 눈에 파묻혔다. 우리 집 겨울은 파농사가 잘되었다. 며칠 전까지 배추 된장국과 고등어 무청 조림을 파 잘라 넣고 해 먹었다. 눈 녹으면 다시 얘들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의 생명력을 기다려 본다.      


이제 내 일을 접고, 일찌거니 귀가를 서둘 남편을 위해 따뜻한 저녁을 준비해야겠다. 길 나섰다 돌아오면, 집이 더 정겹게 느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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