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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Aug 21. 2023

해녀의 고장, 서귀포의 소년들


“선생님, 선생님. 광복절 날 수업 아침에 해도 돼요?”

고1 학생들이 물었다.
 “아침 몇 시? 난 일곱 시 이후엔 가능하다만.”

“여덟 시요.”

 나는 웃음을 팍 터뜨렸다.

“느네가? 휴일에 여덟 시에 일어난다고? 대체 무슨 일이니?”


방학 마지막 날인 휴일에 가족, 친구들과 수영하러 간단다. 산짓물 물놀이장으로 간다는데, 거긴 재미없다고 아우성이다.

“그럼 어디가 제일 재밌니?”

“법환 바다요!”

수영장도 시시하고, 모래도 귀찮고, 바로 깊은 곳으로 다이빙할 수 있는 바다가 제일 재미있단다. 수영 잘하냐고 물으니, 모두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아, 여기는 해녀의 고장이었지.’ 

법환에는 ‘법환 좀녀마을 해녀학교’도 있고, ‘해녀체험센터’도 있다. 아마도 그곳 바다가 물질하고 배우기 적절한 모양이다.     

새롭게 이들이 서귀포 소년임을 깨닫는다. 

얘들은 자기가 어디에 사는지 알까?’ 


청소년은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다. 대입을 염두에 두고, 빡시게 공부하고, 시험 성적에 울고 웃고, 방학이면 서울의 기숙학원에 들어가 한두 달 살다 오기도 한다.

전국 공통인 입시생이지만, 이들에게는 바다가 곁에 있다. 더울 때 미어터지는 수영장이 아닌, 푸르고 깨끗한 바다에 짬만 나면 풍덩 뛰어들 수 있다. 그 싱싱한 자유의 혜택을 지금은 모를 것이다.      


   



서귀포의 고등학교는 특성이 있다.

제주도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고교 진학 방식이 다르다. 제주시는 평준화, 서귀포시는 비평준화이다.      

서귀포 시내에는

서귀포고, 남주고 (남자 고등학교)

서귀포여고, 삼성여고 (여자 고등학교)가 있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서귀포고와 서귀포여고를 진학하고, 그다음 학생들은 남주고와 삼성여고에 간다. 하지만 대입에서 수시로 진학하기 위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남주고와 삼성여고에 가서 고득점을 노리기도 한다. 2년 전에는 남주고에서 서울의대에 진학한 학생이 나왔다.     


무시 못할 현실은, 남주고에서 서울의대 진학한 졸업생이 나온 해에는 잘하는 중학생들이 남주고로 대거 진학해 남주고 실력이 높아졌고, 올해는 서귀포고의 서울대 합격생이 늘어 서고로 잘하는 학생들이 몰리기도 했다. 사실 잘하는 학생들이 몰리면 수시 점수를 따기 힘들어져 반드시 좋은 상황은 아니다. 어차피 서귀포는 정시보다 수시로 대학 진학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수시 제도는 옳다고 본다. 전국 어디서나 자신이 다닌 학교 학업에만 충실하면 일류 대학에 진학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자신의 신념이나 필요에 따라서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서귀포 토박이들은 달라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선생님, 여기는요. 서고에서 꼴찌를 하더라도 서고 보내고 싶어 해요.

“저는 아이 남주고 다닌다 했더니, 더 이상 말이 없는 분도 봤어요.”


이주민은 이해할 수 없는 토박이들의 서귀포고에 대한 자부심이다. 서고를 나와야 인맥도 생기고, 지역 사회에서 부모도 떳떳한 모양이다.

“남주고 보내려 했더니, 할머니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했어요.”

옛날 경기고나 부산고에 보냈던 부모 마음을 떠올리자 짐작이 갔다.     


서울에서 이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서울로 보낸다. 아예 다시 돌아가든지 서울 친척 집에 보내든지 한다. 특출 나게 잘하는 아이라 외고나 과고, 혹은 예고를 보낼 게 아니라면, 나는 제주도에서 고교를 다녀도 충분히 대학 진학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서귀포가 못 미더우면, 제주시에는 더 진학률 빵빵한 고교들도 있다.      


     



지난여름방학 제주도는 각 고등학교에서 한 명씩 뽑아 일인당 600만 원을 들여 파리와 런던에 대학 순례를 보냈다. 전교 1등을 한 내 학생도 뽑혀서 다녀왔다.


“파리는 비 와도 서귀포처럼 습하지 않고 선선해요.”

한창 날씨 좋을 때 유럽을 다녀온 녀석은 한동안 파리와 런던앓이를 했다. 처음 가본 외국이, 소르본느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들이 눈에 선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서귀포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아.

“예에?”     


너희들은 모르리라. 지금은 Fernweh(페른베: 먼 곳에의 그리움)를 앓지만, 어른이 되면 서귀포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네게 무엇을 남겼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싱싱하게 검어진 얼굴로 돌아올 아이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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