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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Jul 21. 2023

희신이네가 떴다!

제주도민 맛집은 도민 맛집이 아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은 ‘희신이네’이다. 퇴근 후 배는 고픈데, 바빠서 저녁 준비할 시간은 없었던 날. “에이, 멀리 갈 힘도 없다. 그냥 희신이네 가서 깐풍기랑 짬뽕이나 먹읍시다.” 하며 일 년에 한두 번 가는 식당. 서귀포에 이사 와서 닭 샤부샤부는 딱 한 번 먹었는데 내 입맛에는 별로였다. 하지만 이 집의 깐풍기는 달짝지근한 식감이 입에 달라붙고, 짬뽕은 국물이 맛있어 우리의 식당 리스트에 있는 집이었다.   

  


그런 희신이네가 어느 날 떴다. 이 더위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다, 신기해서 검색해 보니 과연 네이버에 줄줄 후기가 올라왔다.

“아니, 대체 왜 뜬 거야? 갑자기? 왕희신(주인아저씨 딸)이 광고라도 때린 건가?”

좀 묘한 기분이다. 주인아저씨도 좋고, 음식 몇 가지는 맛있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줄 서서 기다렸다 먹을 맛집인가 싶다.      


가끔 도민 맛집이란 타이틀로 유명한 집들이 이런 경우가 있었다. 시내의 한 국숫집은 대기가 어마어마했는데, 나는 이미 개업 초기에 그 집에 가보고, ‘더 이상 안 와도 되는 집’이라 결론을 내린 터였다.

맞은편 내 점심밥집, 유명하지 않은 도민 식당에 갔을 때, 국숫집 바깥에 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며 주인아줌마랑 이야기 나누었다.

“광고를 어마어마하게 하는 모양이죠?”

했더니 아줌마가 씁쓰레하게 웃었다.     


이제 더 이상 서귀포인 만의 맛집은 거의 없다. 내 지인의 동생은 지금 핫한 큰 식당을 개업하면서 처음부터 광고 폭격을 했다. 자연스레 그 집은 제주여행 온 사람들이 맘먹고 돈 쓰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는 절대 안 간다. 갈치구이 먹고, 흑돼지 먹으러 그렇게 큰돈 쓰러 갈 일인가. 제주에서 돼지고기는 뒷골목 식당이라도 맛있다.    

  

서귀포는 식당 수도 적지만, 맛의 수준 차이가 심하다. 우리도 검증되지 않은 집은 안 간다. 우연히 들어갔더니 맛집이더라, 이런 식당은 없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도저히 못 먹을 맛이고, 위생도 의문스러워 먹다가 나온 적도 있다. 외식은 가는 집만 가고, 새로운 맛을 즐기고 싶을 때는 제주시까지 가기도 한다. 이번 달 내 생일날은 제주시 구남동에 있는 ‘더스푼’이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가족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내일은 학부형들과 서귀포 시내의 ‘센트로’란 식당에서 만난다. 가끔 이렇게 맛있고, 유명한 곳들에 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외식은 예전의 희신이네처럼 조촐하고, 정갈한  맛집에 간다.    

 

여름이 되면 콩국수 먹으러 가는 ‘동홍분식’도 이제 슬슬 뜨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후기가 많아지는 것을 보면. 나는 사실 단골 식당들이 인터넷에 뜨는 것이 썩 반갑지는 않다. 식당 주인입장에서야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겠지만, 외지인들 많아지면 주차 힘들지, 시끄럽지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된다. 실지로 도민들은 인터넷에 핫한 도민 맛집에 잘 가지 않는다. 친한 식당 주인들에게 물어보면, 일단 유명해지면 외지인이 80%, 도민이 20% 정도로 외지인들이 많아진단다.      


요즘은 내 주차장 부근 ‘종명식당’이 새로 리노베이션 해서 도민들로 만원이다. 식육식당이라 내가 고기를 사는 집이다. 돼지갈비가 푸짐하고 양념이 맛있어 가끔 사다가 집에서 구워 먹는다. 이 집도 지금은 도민 맛집인데, 언젠가는 또 뜰 것이다.

쩝쩝. 뭐 우리만 맛있는 것 먹자는 심보는 아니지만, 내가 아끼는 식당들은 우리들의 입맛으로 남아 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희신이네는 왜 떴을까? 한 번 가서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싶어도, 바깥의 긴 줄을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제 깐풍기는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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