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는 전날 서울 시댁에 간다. 남편과 같이 가서 가족들을 만나고, 시댁 어르신들도 찾아뵙는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일가친척이 다 모여 방마다 제대로 앉을자리조차 없었지만, 아버님 가신 후는 아무래도 손님이 줄었다. 연희동 작은어머니는 이제 거동이 불편해서 우리가 찾아뵙는다. 나는 남편과 같이 즐거이 연희동 나들이를 한다.
어른들을 찾아뵐 때는 봉투를 건네며 인사드렸다. 몇 년 전부터 작은어머니는 내게 설이면 세뱃돈 삼아 용돈을 주셨다. 처음에는 몹시 당황했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사양해도 작은어머니는 주려고 마음먹고 계셨던지 오만 원권 두 장 십만 원이 담긴 봉투를 건네셨다. 난처했지만 은근히 기분 좋았다. 어른에게 용돈이나 세뱃돈을 받는 건 몇십 년 만이었다.
그 귀한 돈을 어떻게 쓸지 몰랐다. 쓸 수가 없었다. 나는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것을 카드로 사고, 카드가 잘 안 통하는 오일장에 갈 때만 집에서 현금을 챙겨 갔다. 그마저도 늘 남편과 같이 오일장에 가니 남편이 현금을 챙겨서 내 수중에는 단돈 천 원도 없을 적이 잦았다.
생각하다가, 그 현금을 차의 운전석 옆자리 포켓 지갑에 두어 갑자기 현금이 필요할 때 비상금으로 써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세뱃돈을 거기 두었다는 것을 잊은 채 일 년이 거의 지났다. 어느 날 그 돈을 다시 발견한 나는 묘한 마음이 들었다. 차에 둔 이 선물 덕에 내 차는 일 년 동안 운행을 잘한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 연관이 없지만, 마치 그 세뱃돈이 안전운전을 도와준 부적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분 성품 탓일 것이다. 남편은 작은어머니가 따뜻하게 돌보아 주셨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차에 늘 그 돈을 넣어 다닌다. 1년이 지나면 새로 받은 세뱃돈으로 바꾸었다. 그 돈을 한 해에 다 쓴 적도 없이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차 산 지 6년이 다 되어 가는데 접촉 사고 하나 없는 것은, 좋은 뜻으로 주신 돈이 부적처럼 효력을 발한다 믿는다. 그리고 어른의 그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든다.
어제 오전에는 남편이 감기에 걸려 혼자 오일장에 갔다. 단골 가게에서 왜 혼자 왔느냐고 묻는다. 남편이 안 가니 덜렁 현금을 안 챙기고 갔다. 배도 출출해서 호떡이라도 사 먹고 싶은데 내 지갑엔 현금 천 원이 없다.
맞다! 내 현금!
몇 달 전 오일장에서 오만 원을 아까워하면서 헐어 쓰고, 남은 돈을 동전 지갑에 넣어두었다. 차에 다시 가서 동전 지갑을 꺼내와서 따끈한 호떡을 사 먹기 위해 줄 선다.
일회용 컵에 담아주는 뜨끈하고 달달한 호떡을 먹으니 웃음이 난다. 호떡을 호호 불어 조금씩 먹으면서 명절 전 주말 혼잡한 오일장을 느긋이 산책하듯 걷는다. 이 돈을 쓸 때마다 이렇게 기분 좋으니, 나도 나중에 조카며느리가 오면 이렇게 세뱃돈을 나누어 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세뱃돈을 아랫사람에게 주는 것은 평범하다.
하지만 돈이 부적 같은 마법을 부리기 위해서는 주는 사람의 인품이 더해져야 한다.
그런 기품 있는 인격을 갖추도록 더 노력해야지.
선한 마음으로 나는 오일장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