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2년 차 영어학원 선생이다. 줄곧 혼자 수업했고, 한창 잘될 때는 50명 넘는 학생도 했었기에 제자가 500명은 될 것이다. 더 많을 것 같지만, 한 학생이 오래 다니고, 한 집안 세 형제자매가 다녔기에 학생 수는 많지 않은 편이다.
이 일을 22년이나 해올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늘 기대되고, 그 시간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물론 힘든 학생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학생을 ‘나 아니면 안 되는’ 학생이라 여겨 전력을 다한다.
오랫동안 한 아이와 수업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가정이나 부모에 대해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알게 되는 게 있지만, 그것은 그 가족의 사생활이라 여겨 일절 발설하지 않고, 개입도 잘 안 한다.
하지만 나는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선생님이다. 아이의 공부 면에서는 늘 엄마나 아빠에게 알려 주고, 의논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학생, 부모, 학원 선생. 세 박자가 잘 맞아야 성적이 오른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현재의 실력이나 앞으로의 기대 범위에 대해 알려준다. 부모의 과다한 기대는 아이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제는 예전에 만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기에 그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22년 동안 내가 만난 아이들과 부모의 이야기를 그들의 명예에 흠이 되지 않는 한도에서 해보려 한다.
제주도에서 만난 학생들, 현재 학생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건 예의가 아니다.
사실 나는 어린 학생들보다 고3 수업이 체질에 맞았다. 수업 준비와 자료 준비에 시간을 많이 써도, 한 가지 목표로 진지하게 배우고, 맹렬하게 공부하는 그런 분위기가 내 스타일이었다.
학생들이 어릴수록 힘들었다. 공부보다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가르치는 기술이 더 필요하기도 했고, 애들에게도 좀 더 발랄하고, 노래도 잘하고, 유머 넘치는 선생님이 더 자극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가끔 별 유머도 없는 내게 배우는 영어가 재밌다는 학생들을 만나면, 내가 도리어 신기했다. 다만, 화를 잘 내지 않고, 물론 때리는 일도 없으니, 그게 아이들에게는 안심이 되는 걸까 싶다.
어제 고2 한 학생이 말했다.
“아 정말 일 많아서 숙제 하나도 못 했는데, 오늘 수학은 째야겠다. 수학샘은 너무 무서워요.”
“야, 그럼 영어샘은 무섭지 않아서 숙제 못 했는데 왔단 말이야?”
그러면서 즈네들끼리 웃고 난리다.
“느네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거지. 화내면 뭐 해? 나중에 단단히 보충해.”
아이들에게 맡기는 거다. 나는 학생의 자율적 의욕에 기대는 선생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제발 학부모들도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제 가진 몫대로, 역량대로 자라게 해 주자. 그게 22년 동안 변함없는 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