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나 직업처럼 초혼이든 재혼이든 결혼에도 적성이 필요하다. 마치 맞지 않는 진로나 직업처럼 결혼이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은 하지 않는 게 낫다. 그런 사람이 결혼하면 결국 가족의 불행을 낳는다. 그러면 결혼의 적성은 무엇일까?
CASE 1
그는 아주 잘생긴 남자였어요. 연애할 때 같이 길을 걸으면 다른 여자들이 힐끗거리는 걸 자주 봤지요. 잘생겨서 좋아한 건 아니었지만, 함께 찍은 사진을 보거나 친구들과 만나면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또 다정했어요. 늘 나를 챙겨 주고, 사소한 선물을 수시로 건네서 감동할 때가 많았어요. 행복한 연애를 이 년쯤하고 나니 가족들에게서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왔어요.
넉넉한 집안이었죠. 부모가 부자여서, 그때까지 직업이 없었던 남자에게 곧 가게를 차려줄 것이라 했어요. 저도 일을 하고 있지 않았지만, 있는 집인데 아들을 그냥 두겠냐고 판단하여 우리 집에서도 허락받았어요.
순조롭게 결혼하였고, 시집살이를 했어요. 남편은 시댁에 피시방을 차려달라고 해서 가게를 열었고요. 남편은 밤새워 일하고 아침에 퇴근했어요. 얼마 후 알게 되었어요. 남편이 도박 중독이라는 것을. 이미 나는 임신을 하고 있었고, 건강한 아들을 낳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이나 시어른들은 제 아이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결국 저는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나왔지요.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양육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 아빠는 애가 어릴 때 한두 번 만나러 오고 그 이후 찾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일하고 벌어서 아이를 대학 보냈습니다. 어떻게 아이 아빠는 자식이 궁금하지도 않은 걸까요.
CASE 2
25세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무능력했고, 불성실했어요. 결혼할 때도 대출받아서 했다는 것을 후에 알았고, 직장도 이직이 잦았습니다. 삼 년 후 친권을 주장하면 협의이혼 안 해줄까 봐, 친권은 포기한 채 아이만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혼 후에는 생활비는 물론 양육비도 전혀 지원받지 않았고, 이후 연락처도 모릅니다. 이혼 후 딱 한 번 아이 여권 때문에 통화했습니다.
이혼하고 2년이 지난 후 지금 남편을 만나 1년 남짓 사귀다가 서른 갓 넘어 재혼했습니다. 직장 동료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어요. 상대방은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고, 자기 집도 있어 경제적으로 편안해 보였습니다. 또 서로의 아이들 성별이 같아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습니다.
저는 이혼 후 억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나는 크게 하자가 없는데, 왜 이혼하게 되었을까? 반드시 재혼해서 잘 살 거야.”
저는 재혼에 자신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저보다 열 살이 많았어요. 처음에 큰 시누이는 제 의도를 의심했어요.
남편은 착해서 좋았지만, 착해서 힘들었어요. 시누이가 그런 말을 할 때 중간 역할을 해주어야 할 사람인데 그게 미흡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재혼에 만족합니다. 가정을 가진 후 다시 행복을 찾았고, 남편이 굳이 힘들게 일하지 말라고 해서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저녁 6시면 귀가해서 가족이 같이 밥 먹기를 원했습니다. 새로 아이를 가질 생각은 없고요. 그저 남편과 두 아이와 늙을 때까지 잘 살고 싶습니다.
CASE 1의 남편은 전형적으로 결혼 적성이 아닌 사람이다. 연애에서 그쳐야 했을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 엄마는 힘들게 아이를 길렀다. 이혼 후 뒤늦게 자격증 따서 취업하여 일하느라 재혼은 꿈도 못 꾸었다. 생활반경이 일터와 집으로 한정되어 있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렇다고 끼가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적이고 다소곳한 사람이라 혼자 나이 들어 버려 곁에서 보기 안타까웠다. 결혼 전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알아보기는 참 쉽지 않은 일이다.
CASE 2의 재혼 부부는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책임감도 있었고, 안정된 가정을 열망하는 사람들이어서 새로 일군 가정에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성숙한 사람들이기에 재혼 가정의 여러 어려움을 겪어도 탄탄한 가정 기반에서 헤쳐 나갈 수 있었다.
내가 보는 결혼의 적성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책임감
둘째, 나 자신보다 상대를 배려
셋째, 인내.
재혼도 초혼과 다를 바 없다. 기본적으로 책임감과 인내가 바탕이 되고, 나보다 상대를 먼저 배려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상대보다 나를 먼저 돌보고 싶은 사람은 결혼하지 말자. 뻔하지만 진리이다.
간혹 결혼 생활에서 힘들어하는 글을 읽을 때 나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요. 힘을 내서 자신을 돌보아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오늘 당장 맞아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 우울하면 약을 먹더라도요. 이혼하는 사람은 항상 상대편의 잘못으로 이혼했다고 비난하더군요. 그러니 이혼을 결정하기보다 이혼하려면 준비부터 하세요. 이혼은 최후의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그 마지막은 저절로 알게 되어요. 그날까지는 힘껏 인내해 봅시다.”
* 재혼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은 의외로 읽을 게 별로 없다. 이 책은 오래전에 나와서 지금 시중 책방에서 구할 수 없지만, 진지한 글쓰기를 하고 있어 재혼을 고려하는 사람은 찾아서 읽어볼 만하다.
『재혼 그리고 함께 서기』 마주해, 국민일보, 1999년 초판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