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의 조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돈과 경제력이다. 사랑만으로 결혼해도 모든 것을 채워 나갈 수 있는 젊은 나이의 초혼과 달리, 재혼을 고려하는 사람들은 결혼 후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연애만 할 것이다.
모든 준비가 필요한 게 재혼이다. 그래서 재혼하기 전에 상대방과 ‘혼전 합의서’를 작성해 보기를 권한다. 내가 재혼할 때는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고, 알았어도 뭐 이렇게까지야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만 각오하기보다 둘이 마주 앉아 조목조목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장이 필요하다. 살아보니 필요했던 항목들을 돌아보면서, 재혼 전 혼전 합의서를 작성해 보았다.
혼전 계약서는 원래 할리우드 스타들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작성한 것이다. ‘프리넙 prenup(prenuptial agreement)’이라 해서 재산이 많은 스타가 이혼할 때 재산 분할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혼 전에 미리 작성하는 계약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전 계약서’, 혹은 ‘혼전 합의서’란 용어로 쓰인다.
즉 이혼을 대비한 것이지만, 이것을 좀 더 폭넓고 융통성 있게 활용하자. 단지 재산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재혼에서 생길 수 있는 많은 문제를 짚어보고 현명하게 준비하자.
첫 결혼의 이혼 사유는 재혼에서 중요하다. 시부모, 폭력, 혹은 외도의 문제로 이혼한 사람들은 재혼에 회의적이고, 다시 그런 문제가 발생할까 두려워한다.
나의 경우는 첫 결혼 17년 동안 과도한 시집살이에 불행했었기에 마음의 상처가 치료되었어도, 재혼에서 같은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와 같은 처지라면 시부모님들과의 관계에 대한 확실한 선 긋기가 있어야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 폭력이나 외도가 문제였다면 이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그래야 새 결혼에 대해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해 보자.
“한 달에 두 번 시댁에 가기로 합의해 놓고, 만일 세 번 가면 어찌 되는데? 집안일은 반씩 나누어하기로 했는데, 남편이 바빠서 일을 거의 도와주지 못하면 계약을 어긴 건가?”
이런 의문에 봉착할 수 있다. 그러면 이 ‘혼전 합의서’가 법적 효력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인정되는 혼전 계약서란 결혼 전에 가지고 있던 내 재산은 끝까지 내 것이라는 의미 정도이다. 재산 분할이나 상속을 포기하라거나 결혼 후에 생긴 재산을 나눠주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혼전 계약서는 작성해도 법적 효력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민법상 ‘부부재산 약정등기’가 있다.
결혼 전의 내 재산(특유재산)은 공동명의로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주소와 규모와 소유관계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렇게 적어야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부부재산 약정은 결혼 생활 중의 재산만을 규정하기 때문에 이혼할 때 재산 분할에 관해서는 규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혼할 때 참작 사유가 되기 때문에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다고 한다. 법률적인 문제는 복잡하기에 이혼 시에는 변호사와 상담해야 한다.
이런 법적인 효력까지 따져서 혼전 합의서를 작성하자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나서 지나간 세월을 번복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써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혼전 계약서’보다 ‘혼전 합의서’란 용어를 사용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