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ngst Essen Seele Auf)는 지속되는 불안에 대한 솔직한 토로이다. 내 성격이기도 하고, 정황이기도 했다. 지난여름 이후 이 말을 종종 떠올릴 정도로 불안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출근길에 절에 들러 매일 절했다.
2주 전, 남편은 저녁 술자리에 갔고 나는 막 퇴근해서 부엌에 있었다. 바쁘게 돌아다닌 하루여서 집에 오니 몸이 피곤한데, 좀 이상했다. 당뇨가 없는데, 마치 저혈당 증세 같다고 할까. 배가 아픈지 고픈지 그랬고, 몸이 떨렸다. 과자를 좀 먹고 누웠지만, 안정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게 불안을 가중했다. 15분쯤 지나도 가라앉지 않고, 몸이 달달 떨려 운전도 할 수 없었다. 119를 부르고 기다리는 동안 패닉상태에 빠졌다. 10년 만에 다시 온 공황발작이었다.
2015년 가을 어느 밤.
감기기가 있어 약을 좀 먹고 자는 게 낫겠다 싶었다. 몇 달 전 병원에서 지어온 약이 있는 게 기억났고, 증세가 비슷하여 그 약을 먹었다.
10분이 지나기 전에, 이상하게 손목이 근질거리더니 알레르기 같은 것이 돋았다. 미처 20분이 지나지 않아 나는 전신에(몸속에도) 두드러기가 났고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온몸이 아프고 숨이 막혀 곧 죽을 것 같았다.
잠든 남편을 깨워, 119를 부르고 응급실에 겨우 도착했고, 주사 맞고 몇 시간 후 귀가했다. 그 후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끝에 나는 세파계 항생제 부작용이 있고, 그날의 통증은 항생제로 인한 아나필락시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 이전에는 한 번도 항생제 부작용이 없었는데 그때부터 생긴 것이고, 그 이유는 의사도 나도 몰랐다.
2016년 봄, 날씨만 좋으면 산에 한 시간이라도 가려고 노력했다. 서귀포 치유의 숲이 개장하기 전, 한적한 길을 혼자 걷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또 이상했다. 다시 호흡곤란으로 이어졌지만, 산중에는 아무도 없어 119에 전화했고, 병원에 갈 때까지는 당장 죽을 것 같았다.
이번에는 항생제를 먹지 않았는데 왜 또 아나필락시스가 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공황장애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웃었다. 내가 무슨 공황장애야, 광장공포증도 없고, 비행기 타는 것도 무섭지 않은 사람인데. 그러나 다니던 내과에 가서 다시 선생님과 상담하니 아무래도 공황장애 같다는 말을 또 하셔, 시울정신과에 가서 상담했다.
그로부터 나는 일 년간 공황장애 약을 먹었고,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에 약을 끊었다. 단, 비상시에 먹을 약은 늘 챙겨 다니고, 날이 너무 덥고 몸이 힘들면 신호가 와서 알프람정 한 알을 먹고 넘겼다.
일 년간 약을 먹는 도중에도 두 번 구급차를 탔고, 평생 안타 본 구급차를 제주도에 와서 네 번이나 타다니, 하고 자조하곤 했다.
공황장애는 좀 시시하게 보일 수 있다. 남들 보기는 과장이나 웃기게 보이지만, 혼자는 심각하고 두려운 것. 그래서 그 상태를 말도 잘 못하는 어려움.
이를테면 한라산을 오르면서 등산로 주위에 주욱 따라 올라가는 레일을 자주 체크하게 되는 거. 내가 저거 타고 내려와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아니, 올라가긴 하는데 살아서 못 내려오는 건 아닌가. 그러면서 그런 자신에게 실소가 나서 배에 힘주고, 다시 긴 호흡을 내뱉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공황발작 후 약을 먹기 시작하면, 내 안에서 조그만 일에도 출렁거리던 물의 움직임이 줄어들고, 고요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이제 그 상태에 도달했다. 내 느낌이 그렇다.
문제는 글 쓰고 음악 듣는 재미로 살았는데 약을 먹으면 안정되는 대신 의욕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글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할 일 마치면 그저 쉬고 싶고, 자고 싶다. 10년 전, 쥐꼬리만 한 재능에 쥐꼬리만 한 병을 달고서도 창의력이 말살되는 걸 경험했다. 발랄한 마음과 발칙한 행동은 없어지고,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잔잔해진다.
아무튼 나는 시울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는 환자이다. 이번 진료에서도 약은 증량하지 않았고, 당분간 비상약 지참하고 매일 밤 약 먹고 잠도 8시간씩 잘 잘 예정이다.
* 사진은 공황이 올 때 과호흡 시 처치법. 종이봉투를 대고 호흡하지만, 나는 그저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내쉬는 숨을 4:6으로 길게 한다. 그게 훨씬 도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