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도 시니어 유학파가 있어요.
기노쿠니야 서점(紀伊國屋書店)에 눈길을 끄는 책이 있었다.
『50대부터의 해외 유학』
일본 이카로스 出版
2005년 9월 15일 초판 발행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이야기였다.
‘자식도 보내기 힘든데, 늙은이들이 공부하러 가?’
‘여행도 아니고, 유학이라니. 그 나이에 공부가 돼?’
의아한 시선을 받기 딱 알맞다.
그러나 그 책이 놓여 있던 진열대에는 60대 할아버지 유학생의 동유럽 유학기가 1, 2권으로 나와 있었고, ‘시니어 해외 유학’이란 말도 보였다. 일본에서는 이미 그런 풍조가 드물지 않은 듯했다. 흥미가 솟아 가장 보편적인 내용을 다룬 이 책을 샀다.
1993년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동생이 살던 괴팅엔까지 가는 ICE 기차 통로에는 한 여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비싼 기차 삯 때문에 입석 사서 통로에서 시간 보내고 있던 동양 여자애가 안 되어 보여, 나는 준비해 온 김밥과 귤을 나누어 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구치 나오꼬.
독일 북쪽에 어학연수 온 그 애를 4개월 후, 내가 사는 남쪽의 괴테 인스티튜트의 한 반에서 다시 만나 가깝게 지냈다. 귀국 후에도 편지나 카드를 오래 주고받았다.
그때 나는 일본 학생들의 유학 패턴을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유학의 의미는 공부이다. 그를 위해선 가족의 분가를 결심하고서 결행할 정도로 중대한 전환점이다. 유학이 시작된 80년대에도, 지금도.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학생들은 3개월이 한 학기인 어학 코스를 각 지방마다 돌아다니면서 한 학기씩 하고, 또 이동하며 6개월이나 1년을 보냈다. 여행 겸 유학인 셈이다. 나는 신기하기도 했고, 좀 진득하게 한 군데 눌어붙어 앉아 공부하지 않는 일본 젊은이들의 어학연수 패턴이 마음에 안 차기도 했다.
일본의 시니어 유학 경향도 마찬가지이다. 단기 어학연수가 대세이다.
‘여행은 이제 질렸고, 좀 더 새로운 체험을 하고 싶다. 유학 가는 손자와 함께 해외에서 생활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 발간된 유학 잡지들을 보면 그런 사실이 더욱 드러난다. 잡지의 앞쪽에 나오는 인터뷰를 몇 인용해 보자.
1. 50대 주부, 호놀룰루에서 1주일간 영어 연수 홈스테이
2. 16세 고교생, 뉴욕에서 2주간 영어 연수 홈스테이 및 댄스 레슨
3. 21세 대학생, 미국 LA에서 1년간 영어 연수 홈스테이
4. 30세 회사원, 아일랜드에서 12주간 영어 연수 홈스테이
5. 66세 할머니, 영국 런던에서 2주일간 영어 연수, 영어 선생님 집에서 체류
나이, 기간, 목적이 다양하다. 우리보다 유학의 개념이 훨씬 포괄적이다. 우리는 이들의 여정을 어학연수라 여기고, 유학이라 이름 붙이지 않는다. 1주일 동안 오전에는 영어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관광 다니는 그런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그런 1~2주짜리 프로그램들을 택해 지역을 달리하여 몇 번이고 가는 것이다. 그런 부담 없는 짧은 유학은 50대 이후라고 못 갈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유학원 사이트에 가보면 반드시 이런 짧은 어학연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 기술을 스킬 업하는 유학, 대학이나 대학원 진학도 젊은이들의 유학처럼 안내하고 있다.
『50대부터의 해외 유학』은 일반 유학서처럼 수속하는 법이라든지, 나라별 정보를 담고 있고, 뒤쪽에는 나라별 체험기를 싣고 있다.
61세 동경 출신의 한 할아버지.
정년퇴직하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세 도시를 3개월씩 합계 9개월 어학연수. 총비용 250만 엔.
60대 효고현에 사는 전업주부. 남편과 사별 후 아이를 독립시키고 현재 혼자 생활. 캐나다에서 1개월 유학 후, 매년 뉴질랜드에서 반년씩 유학. 유학비용 141만 엔.
우리나라에도 이런 분이 있다. 서울의대 교수직을 은퇴한 김원곤.
《50대에 시작한 4개 외국어 도전기》, 《나는 페루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다》등 그의 책을 읽으면, 한국에도 시니어 유학이 드물게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2003년 그는 4개 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2019년 정년퇴임 후에 ‘4개국 어학연수’를 도전했다. 페루에서 스페인어, 툴루즈에서 프랑스어, 도쿄에서 일본어, 중국어는 중국이 어학연수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어 대만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냥 연수 정도가 아니라, 각 언어에서 최고등급을 받는 것이 목표이다.
그는 말하고 있다.
“나이가 많아서든 다른 이유에서든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필자의 경험이 자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50대의 한 지인이 자신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소망을 말했다.
하얼빈 빙등제 보고 한 달 어학연수!
타이완 가오슝에서 한 달 어학연수!
로마에서 이탈리아어 배우고 매일 교황님 집전 미사 가기!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고.
요즘 포털에도 검색하면 우리나라도 50대에 유학 가고 싶어 하는 분들도 있고, 유학원에도 50대 어학연수를 다루는 데도 있다. 일단 유학원에 프로그램이 있어야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데, 아직 한국은 유학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직접 개인이 수속해야 한다. 나는 언젠가 우리나라도 시니어 유학이 붐을 이룰 것이라 믿는다. 아직은 좀 이른가?
맺음말)
나?
우리 부부는 은퇴 후, 스페인에 가서 3~6개월 살면서 언어도 배우고 여행도 다니는 꿈을 꾸고 있다. 나야 지금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가고 싶지. 이제 그렇게 살아도 될 나이지. 하지만 일 좋아하는 남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까지나 일할 기세이다.
건축가인 그는 오매불망 스페인, 난 평생 프랑스. 그러니 바르셀로나에서 어학연수 하면, 주말엔 가까운 남부 프랑스에 장 보러 갈 수 있겠지?
여보, 유학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