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외로운 ‘도시의 사냥꾼’을 졸업하고

- 新 노년 인터뷰

by 꼬낀느


그는 내 고등학교 후배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67세. 그에게 사전 설문을 통해 건강관리와 노후 자산, 노년에 대한 인식 등을 질문했다. 그 설문지를 기반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심장 스텐트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언제 했나요?


2012년에 받았습니다. 당시 담배를 하루 4갑씩 피웠는데, 어느 날 걷는데 숨이 차고 걷지 못했습니다. 내과에 갔더니 당장 큰 병원에 가라 해서, 삼성의료원에 2박 3일 입원해서 시술했어요. 처음에 두 개 받고, 3개월 후 또 하나, 1년 후 또 하나. 모두 4개를 심었습니다. 그 후 1년 후 청소한다고 총 4번을 쨌어요. 그런데 심장 스텐트는 하면 할수록 무지 아파요. 청소할 때도 엄청 아프죠. 그 후 체중 관리했습니다.



-스텐트하고 나서 음식과 건강관리에 주력한 건가요?


그렇죠. 음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아침 안 먹고 하루에 두 끼 먹습니다. 원래 국 없으면 밥 안 먹는데, 특히 저녁에 탄수화물과 국을 배제했습니다. 술 먹고 나면 집에 와서 또 먹곤 했는데, 습관이 완전히 바뀌었죠. 라면도 안 먹고, 점심 밥 반 공기. 물론 바깥에서 가끔 술과 고기는 먹지만, 일상생활은 바뀌었습니다. 샐러드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어요.



- 현재 다른 병은 없나요?


없습니다. 심장은 6개월마다 체크하고, 약 먹어요. 체중 관리가 무척 중요합니다. 고지혈증, 당뇨 없고, 고혈압은 좀 있어서 아주 약하게 약 쓰고 있습니다. 심장 스텐트 하는 사람은 고혈압이 좀 있습니다.



-술 담배는 하시나요?


내가 담배 피울 때만 해도 환경이 좋았죠. 식당이나 집 아파트에서도 다 피웠는데, 14, 5년이 되면서 공공장소에서 흡연이 엄격해졌어요. 2박 3일 입원하고 퇴원하는 날 후배가 병문안을 왔어요. 담배 좀 줘 봐라, 해서 피는데 두 모금 피지 않아서 너무 맛이 없었습니다. 그 후 끊었어요. 수술하고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많아요.


술은 일주일에 한 번도 안 먹을 때가 많아요. 한 달에 2번? 술을 먹을 수 있으면 먹겠는데, 우선 내가 힘듭니다. 일부러 술자리 만드는 게 싫어요. 차라리 정적인 내 시간 갖는 게 좋지, “우리가 남이가.” 하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게 싫어진 겁니다.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원래 골프를 좋아했지 않았나요? 지금은 골프 안 치나요?


골프를 좋아했죠. 업무상 많이 치기도 했고. 골프를 못 치는 이유는…. 몇 년 전에 드럼을 배웠습니다. 어느 날 필 받아서 몇 시간 동안 연습했죠. 갑자기 뚝 하면서 왼쪽 팔꿈치가 무지 아팠어요. 테니스 엘보가 왔습니다. 그 후 골프를 나가도 아파서 드라이브를 칠 수가 없었어요. 물리치료도 받고, 돈 주고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는데 낫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쓰지 말고 내버려 두라 해서 지난 2년 동안 거의 치지 않았어요. 아직도 치면 아파요. 그래서 못 치기도 하고, 같이 갈 만한 멤버도 줄고, 업무적으로 갈 일이 전혀 없어진 탓이죠. 그보다 자전거 타고, 산에 가는 게 더 재미있어요.



-로드 바이크에 입문한 계기는요?


주변에서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함께 했는데, 고통도 있었지만 의외로 재미있었습니다. 의사도, “과해도 심장 안 터진다.”고 추천합니다. 골프는 사실 운동이 안 됩니다. 살도 안 빠지고. 체중 관리하면서 혈액순환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라이딩 하면서 8kg 정도 뺐어요. 나이 먹어도 계속할 수 있는 운동이지요. 혼자 라이딩 하는 걸 좋아하지만, 갑자기 어떤 상황이 닥치면 위험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동호회는 싫어해요. 가까운 사람들 몇이 다니는 게 좋습니다.



- 예전에 사업을 크게 하셨었지요. 한창때 규모는 어땠나요?


중국 공장에 직원만 200명. 외형도 150억, 당시 돈으로. 서울에도 직원 30여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쁜 일은 몰려다니더군요. 여직원도 횡령을 엄청나게 했는데, 잡고 보니 돈이 없었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에 재기할 수 있다면, 사업하는 사람은 한 번 망해보는 것도 좋다.”

사람이 정리됩니다.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람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형제 같았는데 뒤통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전화를 개통할 수 없어 다른 친구 명의로 개통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전화를 정지시키더군요. 갈수록 전화요금도 못 내고, 희망이 안 보이니까. 사람의 중요성, 가족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 그때와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옛날처럼 그렇게 살았으면 벌써 죽었을 겁니다. ‘내려놨다’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난 이제 질투나 부러움이 없어요. 그런가 보다 합니다. 사업상 큰 고비를 넘기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나에게 도움 받았던 사람 열 명 중 아홉 명은 다 등 돌렸습니다. 그 사람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어요.

국내 사업을 접고, 주로 수출 쪽으로 방향을 돌렸어요. 마침 기회가 생겨서, 미군 부대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 크게는 안 벌립니다. 지금은 반 사업을 하고 있어, 언제든 접을 수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사업하지 않아 책임이 크지 않고, 돈은 언제든 회수가 가능해서, 반 사업이라 여깁니다.



-우리 부부는 일 그만두게 되면, 하루 몇 시간 나가서 하는 일을 기대합니다. 지금 하시는 일은 수익이 생기나요?


물론입니다. 여가 시간 활용 차원이 아니라, 책임도 있습니다. 일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어요. 삶의 위기였던 시간에 해남에서 1년을 보냈습니다. 미왕사, 대흥사, 달마사를 돌아다니면서 여행도 하고, 혼자 수련했어요. 아는 동생이 다행히 미왕사 주지를 알아서 템플 스테이를 공짜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것을 내려놨어요. 그 와중에 아홉 명이 등을 돌렸습니다. 정말 어릴 적부터 형제처럼 친했던 친구가 내게 등을 돌렸을 때는 정신적 쇼크가 컸습니다. 극복하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인간이 극단까지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야기 해드릴게요.


어느 날 나주에 며칠 있었어요. 돈이 하나도 없었죠. 친구가 서울에서 와서 같이 슈퍼에 갔어요. 그 바닥에 5만 원짜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 돈을 주어 호주머니에 넣었어요. 그날 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난 전혀 그런 성향이 아니었는데. 내가 그럴 수 있었어요. 그날 울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난 안 좋았어도, 주위에 민폐 끼치지 않고 살았습니다. 직원들 월급과 퇴직금도 다 주었어요. 정말 주위에 돈 달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 후 1년 후, 양재역 화장실 바닥에서 지갑을 주웠습니다. 유학생 지갑이었는데, 학생증과 꽤 많은 돈이 들어 있었어요. 경찰서 가서 돌려주었어요. 감사 인사도 받고요. 난 원래 그런 사람이었지만, 환경은 어떤 사람도 만들 수 있더군요.



-가족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큰 애는 32세, 작은 애는 28세. 둘 다 중학교 때 유학 갔습니다. 큰딸은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데, 요즘에 한국 출장을 자주 옵니다. K-Pop을 미국에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제가 가고 싶다 해서 유학 보냈습니다. 지독히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아들은 취업해서 따로 살아요. 이제 부양 임무는 끝났습니다. 와이프는 올해 60살인데, 운동 열심히 해서 건강합니다.


내가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좀 달라요. 이게 딜레마인데. 와이프와 같이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는 건 좋아요. 하지만 같이 늘 붙어있는 게 좀 자신 없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좀 있어요. 그래서 당구장으로 피신도 가고 하는데, 이런 건 싫었습니다. 난 정적이지만 활동적인 사람이라 일을 택했어요.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물론 업무 스트레스도 있지만, 프로젝트 끝나면 쉴 수 있어 여행도 갑니다.


보수적인 부산 친구들은 잘 이해 못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내 식사는 내가 준비합니다. 부엌에 들어가는 개화된 부산 남자이죠. 식사도 일주일에 한두 번 와이프와 같이하지만, 대부분 각자 먹습니다.



- 건강 지켜 장수하시기 바랍니다.


팔십 세 까지만 살고 싶어요. 그 후는 생산성이 없을 것 같아서요.




그는 SNS도 하지 않고, 컴퓨터도 꼭 필요한 것만 쓴다. 혼자 내면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20년 전 서울에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으리으리한 벤츠를 타고 있었다. 그의 차에서 화면으로 보고 들었던, Toto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를 기억한다. 차에서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하고 놀랐던 순간이다.


사업의 위기를 겪고, 재기하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내 주변 사람들도 쓰린 경험 끝에 무너진 사람들이 많다. 이제 그의 노후 자산 포트폴리오는 노년 생활에 지장 없을 것이라고 한다. 예전에 그가 돈은 많지만 외로운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라이딩을 하며 제주를 한 바퀴 도는 건강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그가 오래 건강하고, 편안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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