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쌀 어디 있어요?”, 남편에게 물었다

by 꼬낀느

어제 콩나물밥 하려고, 쌀을 찾다 보니 없어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보내고 보니, 이건 불량 주부 정도가 아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 혼자 피시식 웃는다.

나는 집에서 밥 안 한다. 식사는 한다. 아침은 오트밀과 두유로 간단히 먹고, 점심은 학원에서 현미밥을 해 먹는다. 저녁은 집에서 야채와 반찬 위주로 먹는다. 그러다 보니 집에 쌀이 어디 얼마큼 있는지 몰랐다.

대신 남편은 쌀밥을 좋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성스레 솥밥을 지어 며칠 분을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먹는다. 그러다 보니 집밥은 일 년 내내 남편이 짓게 되었다.


오늘 아침도 귀리 넣고 솥밥을 지은 남편은 밥 짓기에 전문가적 의견을 피력한다.

“귀리 넣고 지은 밥이 맛있어. 현미 보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일품이야. 근데 이번 귀리보다 지난번에 먹었던 좀 작은 귀리가 더 맛이 낫네.”

여러 가지 잡곡을 시도해 보더니 보리와 귀리로 정착했다.


남편이 하는 일은 이게 다가 아니다. 나는 주말에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수업한다. 필요한 식품을 냉장고에 달린 스크린에 추가해 두면, 그는 매 주말 오전, 이마트 가서 한 주 동안 필요한 식품을 구입한다. 세탁소도 들러 일주일 치 세탁물도 맡기고, 찾아온다. 재활용도 버리고, 빨래 개기도 같이 한다.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정원의 나무 손질이다. 전원주택 생활은 주부 혼자나, 남편 혼자 절대 못 한다. 남편이 이렇게 가사를 많이 돕는 것은 한국 가정에선 예외적이다. 젊은 부부들도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남편들이 많을 것이다.




어제저녁 식사를 하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글 쓰면서 내 친구랑 이야기 나누니, 60대 남편들은 평생 부엌에 들어가지 않는대요. 부산 출신 남편들은 그렇다고요. 내 친구는 주위에서 밥 하는 남편 본 적이 없대요.”

그래서 부산 출신 우리들은 집안일 도와주는 남편들을 ‘개화된 부산 남자’라 불렀다.

제주 남편들도 꽤 권위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 40대 학부형들에게 물었다.

“아뇨. 선생님. 주변에 살림 도와주는 분은 잘 못 봤어요. 열 명 중 한 명 정도? 위미나 촌으로 갈수록 더 해요. 서귀포 남자 중엔 부엌에 들어가는 남자 없어요. 그래도 저희 아버지는 늙을수록 집안일을 도와주려 하시더군요.”


늙어서 둘이 사는 생활, 서로 돕고 나누어야 한다. 간단하고 올바른 이치 아닌가. 그렇더라도 남편에게 늘 고맙고, 그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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