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한 분이 ‘책이 명함’이라 해서 무슨 뜻인가 했더니, 요즘은 명함에 연락처와 자신의 출간 도서를 소개한다고 했다. 내가 낸 책이 바로 나를 소개하는 명함이란다. 1쇄를 찍은 책의 90%가 다 팔리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 영상의 시대인데도 많은 사람이 책을 내고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같이 백일 동안 글쓰기 모임 하는 분들 모두에게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간절한 열망을 보고, 적이 놀랐다. 작가란 하늘이 내린 사람으로 여기고 살아왔던 내게는 낯설고 새로운 시대 경향이다. 셀프 출판, 독립 출판을 검색하다, 자가 출판 플랫폼인 부크크와 텀블벅도 알게 되고 나니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졌다. 책 출간의 벽이 낮아졌던 것이다.
나에게도 책을 만들어 보았던 경험이 있었다. 1996년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시절, 한동안 쓴 글이 쌓이고 나니 그 글들을 묶어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독일 생활기 『오렌지와 아우토반』,
마흔 살이 된 해 『불혹』,
그 밖에 불어로 된 동화 번역.
내 글만이 아니라, 같이 글 쓰던 친구들에게 원고를 청탁하여 그 글들을 함께 넣었다. 당시는 이미지의 시대가 아니라 표지에만 사진을 넣고, 책 안에 사진은 없었다. 이 책들은 아래아한글을 이용해서 자가 출판(부크크처럼) 하였고, 필요한 비용은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지원(텀블벅) 받아서 한 100부 만들었다. 물론, 판매는 없이 지원하고 글 써준 친구들과 그 책을 나눴다.
실은 편집이 재미있어서 매년 한 권씩 그렇게 책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이 반동강 난 큰일을 겪으며 더 이상 계속하지 못하고,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그 후 딸을 일본으로 유학 보내고 나니, 상당한 경험과 자료가 쌓였다. 일본 미대를 희망하며 어렸을 적부터 미술을 해왔는데, 고교 3학년이 되어 갑자기 “나는 미술에 재능이 없다.”라며, 일본의 일반 대학으로 길을 틀어서 무척 당황했다. 결국 열심히 길을 찾은 끝에, 와세다대학과 오차노미즈 대학이 가능해서 두 학교에 지원했고, 와세다 대학에 시험을 치른 끝에 문학부에 합격했다. 아마 영어와 일본어를 잘해서 합격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학 전문가들, 학원 선생님들과 해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딸을 보낸 후에, 그 모든 자료가 아까워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일본 유학서를 쓰면 잘 써도 베스트셀러는 안 되겠지만, 매년 정보를 업데이트하면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을까 했다. 그 역시 인생에서 두 번째 큰일이 벌어지는 바람에 맥이 끊겨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 후는 그런 꿈을 꾸지 않고 살았다. 내 글에 냉소적으로 되어, 남을 돕는 글만 쓰고 살았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오늘로 딱 일주일. 글들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제목이 문장이다.
우리의 제목은 명사였다. 길어 봤자, 형용사가 앞에 달린 명사 정도. 그런데, 요즘의 글들은 제목이 글의 축약이었다. 나로서는 쉽지 않은 제목 달기이다.
어제 쓴 글도 원래의 나라면, ‘꿈이 없는 중2’로 간단하게 갔을 것이다. 혼자 머리를 갸웃하며 궁리하다가, ‘꿈이 없는 중2, 어떻게 하죠?’로 정하며 살짝 낯간지러워졌다. 아직도 브런치에서 글 제목 쓰기는 나에게 과제이다.
여기도 거의 모든 이들이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쓰고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바야흐로 명함보다 자신의 책 소개가 자신을 말하는 날이 온 것이다.
책이라.
내가 학교 문집 같은 책이지만, 혼자서 뛸 듯이 기뻤던 그 순간을 돌이켜 보니 작가가 되고, 책을 쓰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책이라면? 내 글 솜씨와 내용에 회의적이다. 주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쓰고 보겠다.
맺음말)
내 독자인 후배, 상냥한 B는 브런치에 들어왔을 때 나를 격려해 주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차 타고 가야 할 거리의 병원에 걸어서 다녀왔어요. 오가며 봄을 만끽했어요. 문득 내년 봄엔 누나 책을 들고 봄날 공원을 거닐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네요.
암튼 주제가 좋습니다. 독자가 금방금방 불어날 거라는데 제 자전거를 걸겠습니다. “
그의 자전거를 확보해 두기 위해, 여기 흔적을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