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 서울 아이들이랑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 사람의 특성이 알게 모르게 드러난다고 할까? 수줍기도 하면서, 내성적이다. 다양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중고등학생들도 순박하다. 말하자면 발랑 까진 녀석은 아주 드물었다.
새 학년이 되면서 새로 만난 형제가 있다. 형은 고1이고, 동생은 중2. 아들 삼 형제인 집에 큰아들, 둘째 아들이다. 형은 전형적인 서귀포 학생같이 수굿한 성품에 가르치기 힘든 학생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중2가 마음에 걸린다. 이미 내게 오기 전부터 고2 과정을 공부하고 있다고 해서 아주 기대가 컸다.
“와 서귀포에선 보기 드문 영재인데? 앞으로 많이 기대할게.”
그런데 아이가 까칠한 여자애처럼 좀체 곁을 내주지 않는다. 그저 별 군소리 없이 제 할 일만 딱 하고 간다. 아이와 교감이 있을 때라야 배움과 가르침도 효율적으로 되어간다. 잘 따르는 아이는 그만큼 빨리 는다.
“넌 꿈이 뭐니?”
“없어요.”
고개도 들지 않고, 단답형이다.
“엉? 꿈이 왜 없니? 그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거 그런 건?”
“없어요.”
살살 달래니 순간적으로 말을 죽 풀어놓는다.
“예전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없어요.”
“너 합기도 매일 저녁에 가고, 아주 좋아한다면서?”
계속하니 말끝을 흐린다.
“그래도 꿈은 있어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렴. 나중에 다시 물어볼게.”
학생의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나면 혼자 춤을 추기도 한다면서 살짝 몰래 동영상도 보내주었다. 그러다 혼자 있고 싶다면서 동굴로 들어가 버리면 엄마는 답답했다. 일찍 사춘기가 와서 그런 모양이라고 여긴다. 속을 알 수 없어, 아이가 어렵단다. 좋고 싫은 기복이 심하고, 고집이 있어 절대 꺾지 않는단다.
고집 이야기를 하니 나도 웃었다. 아이 실력은 중2치고는 탁월한 편이지만, 아직 수능 공부할 단계는 아니었다. 그런데 쓰던 단어장을 갖고 오라니 수능 실전 단어장을 갖고 왔다. 의아해서, 너 아직 이것 공부하면서 고생할 필요 없어. 네가 지금 하는 단계에서는 이런 단어까지 필요 없고. 아직은 고교 필수단어를 더 단단히 해야 해.
설득했지만, 여전히 그 단어장으로 하겠단다. 그래, 그럼 해보라 했다. 어려운 단어 외우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텐데,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대단한 고집이다. 보통 아이들 같으면, 쉬운 걸로 하자면 얼른 좋다고 갈아탄다.
어쨌든 아직은 손톱 밑 까시라기처럼 자꾸 신경이 쓰이는 아이이다. 나는 아이의 실력을 더 탄탄히, 구멍 없이 만들어 주려고 한다. 꿈이 없고, 공부도 시켜서 한다니 모든 걸 아주 잘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문장을 아주 잘 보는데, 문제를 풀면 건성이라 더러 틀린다.
이 흥미롭고, 시니컬한 녀석과 어떻게 하면 좀 더 친해질 수 있을까? 요즘 자주 곰곰이 생각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