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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Apr 11. 2023

속초 여행이 남긴 다섯 가지 기억

2023년 4월

1. 윈드 시어

2. ‘설악산 책’ 북카페

3. 금강산 화암사 예불

4. 소노펠리체 델피노 수영장

5. 김영애할머니 비지찌개


1. 윈드시어


일 년에 두 번 뉴욕에 사는 여동생이 오면, 우리 네 자매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간다. 지난번에는 제주에서 모였고, 이번에는 속초에서 모였다. 


4월 6일 목요일 공항 가는 버스를 탔는데, 플라이강원에서 문자가 온다. 

오늘 제주-양양 항공편, 양양 공항 강풍, 윈드시어로 결항.

순간 머리와 손이 긴박하게 움직인다. 


나는 오늘 속초에 가야 한다. 대안이 뭔가? 일단 서울로 가자. 서울에서 강릉 가는 KTX 타고, 강릉에서 속초로 갈까? 오래간만에 KTX를 타보고 싶지만, 이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가서, 속초 직통 고속버스를 타자. 숙소도 고속터미널에서 가깝다. 제주-서울 비행기, 서울-속초 고속버스. 집 나선 지 8시간 만에 숙소 도착.



2. ‘설악산 책(雪樂山冊)’ 북카페 


나는 소리에 민감하다. 높은 목소리, 기계 소리, 개구리 소리, 반복되는 전자음악 소리가 들리면 몹시 불편하다. 아무 소리 없는 공간이 편안하다. 여기는 북카페. 2층 '카페 소리'에 가기 위해서 들렀는데, 1층에 북 카페가 있었다. 도서관 같은 공간에서 책 보는 사람들이 있어 끌리듯 들어왔더니 고요하다. 책을 편하게 볼 수 있는 자리도 있고, 탁자 자리도 있다. 바깥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보이고, 노트북 타자 소리도 크지 않게 눌러야 한다. 횡재한 기분이다. 이렇게 평화로운 공간을 만들어준 분들에게 감사한다. 





3. 금강산 화암사 예불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의의는 어머니를 몇 년 만에 예불에 모시고 간 것이다. 엄마 86세. 보행이 불편하다. 조금씩 걷기는 하지만, 대부분 휠체어로 이동한다. 엄마는 부자였다. 제주에 땅이 많았고, 아버지 일을 이어받아 사업도 했다. 20년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사업이 차차 기울면서, 땅도 하나씩 팔고 이제 엄마는 집도 없다. 울화증으로 돌아가시는 대신, 엄마는 기도를 택했다. 하루 세 번 집에서 불교방송 틀어놓고, 예불을 드린다. 요즘 엄마의 얼굴은 말갛게 비워지고, 말도 많지 않다. 염색을 관두니, 검은 머리가 나기도 한다. 

엄마를 모시고 갈 수 있는 조용한 절을 찾았다. 내가 차를 빌려 운전했고, 덩치 큰 두 여동생들이 엄마를 법당 안까지 부축했다. 절 입구 주차장에서, “보살님이 다리가 불편하셔서.” 하고 사정을 말하니 법당 앞까지 들어가게 해 주었다. 


마침 사시 예불 시간이었다. 엄마는 법당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우리가 무지했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다음 여행에도 꼭 우리가 힘을 합해 법당까지 모시고 가자.”

효도는 부모가 먹고살게 돈 드리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드리는 거였다.


born, die, life (本多羅)


 4. 소노펠리체 델피노 수영장 


속초 여행을 계획하면서 정보를 모으다가, 이 수영장을 알았다.

“주중 1인당 35,000원으로 비싸긴 한데, 인생샷을 찍을 수 있는 곳이야.”

자매 셋이 갔는데, 운이 없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 산이 흐렸다.


-델피노 수영장에서 인생샷 찍으려면,

1. 오전에 가야 한다. 오후에는 역광이다.

2. 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미세먼지가 없는 날 가야 한다.


돌풍마저 불어서, 뜨끈한 온수탕에서 나오지도 못했다는. 그래도 그런 수영장에 가면 재미있다. 모델 같은 여자들이 풀 메이크업을 하고 와서, 혼자 온갖 폼을 다 잡으며 셀카를 찍는데 그 구경 재미가 쏠쏠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이다.


오후의 역광과 미세먼지로 인해 우리가 본 풍경 / 기대했던 풍경 (델피노 홈페이지)



5. 김영애할머니 순두부 본점 


두부는 내 주식이다. 두부, 콩국수, 청국장, 낫또. 모든 콩류 음식을 좋아한다. 설악산 부근에는 순두부집이 많았다. 그냥 가장 유명한 집이고, 예전에 먹었던 순두부의 깊은 맛이 남아 있는 집이라 갔다. 

이번에는 비지찌개의 맛에 놀랐다. 나도 두부를 만들었다. 두부 만들고 나면 남은 비지에 어릴 적에 엄마가 끓여주던 비지찌개를 떠올리며 김치도 넣고, 돼지고기도 넣고 끓였지만 별 맛이 없어 아무도 먹지 않았다. 입맛 수준이 높아져, 어릴 적 반찬 없을 때 먹었던 까끌한 비지찌개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갖은양념 넣고 빈대떡처럼 구워서 겨우 다 먹었다. 두부 만들면 비지 해치우기가 일이다. 근데, 이 비지찌개는 엄청난 내공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잊을 수 없는 맛이다. 꼭 다시 먹으러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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