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라서 그런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 가면 우선 짬나는 대로 길을 익힌다. 시장, 카페, 병원 위치를 파악하고, 다시 오고 싶은 길을 꼽기도 하며, 빵집과 꽃집 등 냄새 맡으면서 마구 돌아다닌다. 나에게는 냄새가 중요했다. 그리고 걸으면서 동네와 친해진다. 4월 21일로 브런치 한 달. 그간 여기저기 냄새 맡으며 돌아다니다 브런치와 친해졌다.
내가 브런치에서 좋아하는 점은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1. 매거진
처음에는 매거진과 브런치북의 차이가 무엇인지 몰라 꼼꼼히 찾아보았다. 말하자면, 매거진은 파일의 폴더와 같다. 일단 내가 쓰는 글을 폴더로 나누어 모아둘 수 있는 공간이었다. 블로그도 소제목을 만들어 글을 나누어서 모아둘 수 있지만, 브런치는 매거진 별로 간결하게 정리할 수 있다.
2. 브런치북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중요한 차이점은 매거진이 과정이라면 북은 결과이다. 편집의 과정을 거쳐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책이다.
젊은이들과 달리, 꼭 내 책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없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서귀포에서 이룬 건축가의 꿈’이 완결되면 브런치북으로 깔끔하게 만들어 두고 싶다. 그러면 우리 부부의 역사가 될 것이다. 제목은 더 좋은 게 없을까 늘 생각 중이다. 이런 꿈을 꿀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내 글들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완결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3. 사진보다 글
남편은 이미 유튜브 세대이다. 그와 달리 나에게 유튜브는 단지 음악을 듣기 위한 앱이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그는 브런치 글들을 읽고 놀랐다.
“글이 길고, 빽빽해. 너무 글만 길고, 중간에 이미지나 동영상이 없으면 지루하지.”
그래서 내 글이 따분한가 아닌가의 기준은 남편이 다 읽는가, 못 읽는가가 된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의 진지한 시스템이 좋았다. 사람들이 글에 진심이다. 블로그에 글 쓸 때도 나는 이미지는 최소한으로 한다. 여행기가 아닌 이상, 오직 상단에 대표 이미지 하나만 올리고 글만 쓴다. 그래서 블로그에 글 쓸 때는 A4용지 한 장을 안 넘기려 한다. 그 이상 글이 길어지면, 나의 가장 큰 독자인 남편도 딸도 안 읽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블로그에는 제주에서 사는 일상의 글들을 하나씩 짧게 쓰고, 브런치에는 내 속살을 내보인다.
그러니, 어차피 내 글은 대중에게 재미있는 글이기보다 혼자에게 중요한 글이 된다. 조회수가 높을 리가 없다. 내가 조회수에 유일하게 신경 쓰는 부분은 제목을 좀 대중 취향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브런치에 오고 나서야, 요즘의 글과 책 제목이 확실하게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건 적지 않게 고민이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휴대폰 메모장에, 순간 아이디어가 팝콘처럼 튈 경우에는 제목을 저장하기 시작했다. 제목과 내가 적응해 가는 과정이다.
내가 앞으로 가장 신경 쓰고 싶은 글은 신노년에 대한 글이다. 그 글들은 ‘New Senior는 누구인가’ 매거진에 모으고 있다. 조사도 해야 하고, 인터뷰도 하는 중이라 글쓰기가 쉽지 않다. 내 준비가 많이 필요한 글들이지만, 내 글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심심하게 글 쓰고 있는 나에게도 요 며칠 살짝 조회수가 터졌다. 집짓기 글 중 ‘2층 주방과 거실’이 다음 메인의 어딘가 실렸던 모양이다. 나는 좀 민망했다. 극히 개인적인 글이고, 더 신경 쓴 다른 글들도 있는데 왜, 싶기도 했다.
제목도 눈길을 끌지 않는 글이라, 오늘로 조회수 5천이 되지만, 나에겐 희한한 경험이다. 십여 년 전에 딸의 와세다 대학 입학식을 소개한 글이 네이버 메인에 실려 몇만을 기록한 적이 있지만, 글 하나가 이렇게 큰 조회수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었다.
또 제안도 받아봤다. 집에 대한 글을 읽고, 한 커뮤니티에 가입해달라는 메일이 왔다. 고맙긴 하지만, 우리는 집을 마케팅하고 싶지 않다.
“잡지에서 집 소개 하라고 해도 안 한다고 해요.”
“물론이죠.”
블로그를 해보니, 하루에 한 백 명이상만 글을 읽어준다면 글 쓰는 맛이 났다. 그보다 적으면 글 쓰는 이가 신이 안 난다. 지금 총 조회수. 6,927. 뭐 한 달에 이 정도면 해피하다.
아침에 눈 떠서 오늘 오전엔 시간 나니 글 쓸 수 있겠다 싶으면 기분이 좋다. 이런 행복한 기분으로 나는 글 써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