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지 아줌마
며칠 혹독한 날씨이더니 오늘은 한라산이 쨍하게 보일 정도로 밝고 맑은 날씨이다. 사실 이런 날씨는 제주에서도 흔하지 않다. 한라산이 투명하게 보이는 정도로 미세먼지를 가늠한다. 이번 주 내내 바람이 몹시 불고 추웠다. 중앙로터리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몸이 휘청할 정도였다.
날씨만이 아니라 몸도 좋지 않았다. 밤 기침이 심하여 자다가 깨어 생강차를 데워 마시느라 밤잠을 며칠 설쳤다. 오늘 항생제를 쓴 지 이틀 만에 기침이 잡히며 통잠을 잤다. 한라산만큼 내 몸도 환해졌다. 낮에는 마사지가 예약되어 있고, 오후 3시부터 아마도 9시까지는 서귀포 고등학교의 영어 시험이 내일이라 시험 대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날 마사지가 예약되어 있어 다행이다.
나는 마사지가 필수인 사람이다. 그만큼 몸의 움직임이 부족하다는 뜻도 된다. 많이 움직일 때도 마사지는 필요했다. 워낙 젊어서부터 어디서나 마사지를 받았고, 새로운 곳에 가면 그곳의 문화를 체험하듯 마사지를 받았다.
가장 편안했던 마사지는 베트남 냐짱의 아나만다라 리조트에서 받은 마사지였다. 베드에 엎드려 누운 내 눈에 항아리 물에 담긴 꽃이 보였다. 그윽한 분위기의 방에서 받은 마사지는 세지도 약하지도 않고 부드러웠다. 분위기에 더 취했던 모양이다. 그날의 마사지는 내가 받은 최고의 감각적인 마사지였다. 잊을 수 없는 호텔에서 가진 잊을 수 없는 휴식의 시간이었다.
일본 여행을 가면, 호텔에 마사지사를 불러서 방에서 받을 때가 있다. 동경의 한 호텔. 종일 걸어 다녀 피곤해진 날 마사지를 요청했다. 조그마한 할머니가 얌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저런 사람이 괜찮을까 싶어 쳐다봤더니, 그 불안이 전해진 모양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젊은 남자로 바꾸어 드릴까요?”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미안해서 받기로 했다. 그 할머니. 그런데 손압이 장난이 아니었다. 너무나 능숙하고 탄탄하게 눌러가는 그 손길에 놀랐다. 대체 저 힘과 스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본에서 받은 마사지 중에서는 그 할머니가 가장 잊히지 않는다.
홍콩에서는 여행 중에 동생이랑 같이 마사지 받으러 갔다. 좀 전문적인 센터 같은 곳이었는데, 마사지를 마치고 나서, 내 몸에 대한 브리핑을 해준다. 당신은 지금 어디가 어떻게 안 좋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한다. 그게 꼭 맞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대만에서는 한국인에게 유명하다는 마사지 가게를 갔다. 들어가면서 이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마치 호스트바(안 가봤지만)처럼 젊은 남자들이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사실 남자 마사지사는 좀 불편하다. 그래도 체험인데 싶어 거기서 골라주는 젊은 애(!)에게 맡겼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휴식은 물론 되지 않았고, 마사지 후 뭘 잘못 건드렸는지, 손목이 이상해져 며칠을 아팠다. 그래서 젊은 남자 마사지는 신용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에 나갈 때도 마사지를 맛볼 정도로 나는 마사지를 좋아했다. 서울에 살 때도 규칙적으로 마사지를 받았다. 얼굴 마사지는 안 해도, 등과 전신의 긴장을 풀어주는 마사지는 꼭 받았다.
서울에서도 단골집이 있었다. 화장품 가게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마사지하는 분과 친해져서 자주 가서 잔소리를 듣다 오곤 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어깨가 이렇게 딱딱해져 가지곤, 원.”
구시렁대면서도 몸을 살만하게 돌려놓는 재주를 가진 또래 여자였다. 지금도 그립다. 유난한 미모에 날씬한 체격. 어울리지 않게 입은 걸어 내게도 거침없이 말 하던 그분.
제주에 이사 와서, 다시 그런 사람을 찾았다. 수업을 많이 하고,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하기에 몸이 자주 뭉친다. 목욕만으로 안 되어 입도(入島) 초반에 동네 주위, 혹은 중문까지 괜찮다는 마사지 샵 열 군데쯤 가봤다. 마사지는 서로 합이 맞아야 한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나는 미묘하게 불편할 수 있다. 너무 아프기만 해서, 울면서 뛰쳐나온 적도 있다.
지금 가는 곳은 우연히 한 번 갔다가, ‘이런 신세계가…’ 싶어서 정기적으로 찾아간다. 나만 가는 게 아니라, 가족들도 돌아가면서 보냈다. 딸이 결혼하기 전에는 사위의 얼굴까지 관리해서 매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재미있게도, 가족들 모두의 평이 달랐다. 나는 아줌마가 말이 없어, 졸면서 쉬다 온다. 동생은 아줌마가 이야기를 잘한다 했고, 딸은 아줌마가 좀 사이킥(psychic)하다 했다. 아마 사람에 따라 대응 방식이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모두 솜씨가 좋다는 점에는 일치했다.
아줌마는 50대의 자그마한 덩치에 조용조용 말하는 분이다. 서울의 미인 언니처럼 날 혼내지도 않는다. 내 몸을 관리하며 간혹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래서 이렇다, 설명해주기도 한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무려 두 시간 반을 풀어준다. 내 몸 상태에 따라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건지, 이제 오랜 단골이라 성의를 다해주는 건지 그건 모른다.
20년 이상 학원 선생을 하다 보니, 한때는 목이 많이 안 좋았다. 목소리가 잘 안 나와서 말하기가 불편할 정도였는데, 아줌마에게 관리받고 일어나니 목소리가 터졌다. 나는 아줌마를 내 몸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사람으로 여긴다.
내가 좋아하는 아줌마. 나는 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둘 때 더 편한 사람이라 살갑지도 다정하지도 못하다. 그래도 늘 성의를 다해주는 아줌마를 만난 것은 나의 행운이다. 오늘의 마사지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