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앞에 중후한 체격에 첫인상이 좋은 중년 여자가 서 있었다. 두 달 전 처음 아줌마가 우리 집에 온 날이었다. 말이 많거나 일이 건성이면 흡족하지 않아, 내 나름의 시험 기간을 넘기자마자 바꾸곤 하다가 만난 사람이었다. 잽싸게 일을 쳐내진 못해도, 가볍지 않고 과한 호기심도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육류를 씹으면 두꺼운 종잇장을 입에 문 느낌이라 슬며시 뱉곤 했다. 두부와 토마토, 갖은 나물이 내 주식이 되었다. 시간이 모자라 엄두도 못 내던 5가지 이상의 나물과 된장찌개가 준비된 식탁에 수요일 저녁만은 호사하는 기분이다. 내 입김을 쐬지 않은, 맛깔스러운 타인의 음식은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차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주로 내가 묻고, 얌전하지만 은근히 유머가 있는 아줌마가 대답한다.
“애들은요?”
“결혼 안 했어요. 스무 살 때 수녀가 되려고 수녀원에 들어갔는데. 낮에는 괜찮았어요. 밤이 되니 침대의 칸마다 커튼을 쳐요. 하나님과 혼자 마주하라는 뜻인 것 같았는데 그게 그렇게 무섭대요. 결국 나왔어요. 결혼한 친구들이 신혼 때는 이 좋은 것을 왜 안 하냐고 성화 더니, 나이 먹으면서 이혼한 친구들이 생기고, 요즘은 또 절대 하지 말라고 성화네요.”
그녀를 유심히 본다. 내 주위에는 나의 사촌 동생을 비롯하여, 독신일 뿐만 아니라 남자를 겪어 보지 않고 늙은 처녀들이 몇 있다. 혼자 평생을 살아온 그녀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에게서도 가끔 발견되는 교태랄까 색기 없는 무미함이 아줌마에게서도 보였다. 농담하듯 묻는다.
“남자랑 자 본 적은 있수?”
“없어요. 부모님 일찍 돌아가시고 큰오빠가 유달리 감시를 심하게 했는데, 덕분에 젊어서 남자도 사귀어 보지 못했어요.”
“왜 남 다하는 짓도 못 했누? 이제 새삼스럽게 맘 맞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결혼은 못 할 거라. 그쪽 집안 아이들이랑 시집 식구 등. 혼자 맘 편하게 살다 그 모든 거 감당하기 힘들걸요?”
“아이고, 난 두 가지만 생각할 일이 겹쳐도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아 못 살아요.”
나는 크게 웃는다.
“이제까지 뭐 하면서 살았어요?”
아줌마는 선교원에서 아이들을 돌보았는데 운영이 되지 않아 문을 닫았다. 그 후 간병인 하다 산후조리 돕는 일을 했다. 출산에 대한 지식만 있지 경험이 없어서, 자연 분만한 산모에게는 저는 제왕절개를 해서 잘 모른다 하고, 제왕절개를 한 산모에게는 저는 자연분만을 해서 잘 모른다고 둘러댔다. 거짓말하기도 힘들어서 2년 전부터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일 나간다는 집들을 꼽아보고 한 달 수입을 계산해 보니 잘 돼야 90만 원이다.
“90만 원으로 어떻게 생활해요?”
“십일조 내고 나머지는 집 월세랑 생활비 하고, 일하는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와요. 내 물건을 사는 일은 없으니 괜찮아요. 옷은 주로 얻어 입고요.”
“대단하네. 꼬박 십일조도 내고.”
“한 달에 백만 원을 버는 사람이 십만 원 내기보다 천만 원 버는 사람이 백만 원 내기가 더 힘든 것 같대요.”
“십일조를 성실하게 내는 사람은 어떻게든 그 돈을 돌려받더군요.”
“그것은 하나님의 돈이니까요.”
그녀는 동생이 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제 집안일도 익고 더 이상 일러줄 게 없을 만큼 서로 익숙해진다.
“몸은 아픈 데 없어요?”
“몇 년 전부터 오후 3시만 되면 몸살에 걸린 것처럼 온 데가 아파요. 자고 나면 괜찮고요. 혼자 살아서 호르몬 때문에 그렇다더군요. 한약을 먹으니 조금 낫기는 하는데 지금도 밤이 되면 끙끙 앓아요. 서른일곱 살이 되니 그전까지는 모르겠더니 속은 열이 나는데 겉은 춥더군요.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하나 보다 싶었어요.”
그녀는 몇 년 전에 벌써 폐경이 되었다고 하여 나는 혀를 찼다. 밥 먹고 돌아서는 살집 풍성한 엉뎅이를 힐끗 쳐다본다.
문득 한 여자가 떠올랐다. 육십 년 넘게 혼자 살아온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적요로워 보였다. 글 쓰고 영화 보고 음악 듣고 히말라야에 트래킹을 갔다. 언니의 선택과 자유를 동경했다. 그녀는 조카에게서 자식이 주는 기쁨을 얻었다. 나에게는 아이디를 꽃처럼 한 땀 한 땀 수놓은 십자수 액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녀의 지성과 다감한 성품을 많은 후배가 추앙했다. 언니가 하도 담백한 생을 살아서, 과연 그녀가 남자를 만난 적 있을지 후배들은 궁금해했다.
처녀 아줌마. 한 사람은 먹고살기 빠듯했고, 다른 한 사람은 여유롭고 우아했다. 형편이 달랐지만 두 사람에겐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 불만족하지 않고, 자족하며 현재를 살고 있다. 이렇게도 꼿꼿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는 삶은 나에겐 불가능하다. 아줌마나 언니나 두 사람 다 처녀로 살아 모자라지도 않았고, 더 외롭지도 않았다. 연애와 결혼과 출산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꼭 해야 할 일이었던가. 슬며시 고개를 젓는다. 단지 가지 않은 길, 서로 다른 길이다.
오늘은 장에서 탐스러운 복숭아를 골라 들었다. 선선한 바람길을 걸어오며 나는 이 과일을 우리 집 처녀 아줌마에게 맛 보여 주고 싶었다.
맺음말
글을 끊임없이 고친다. 이전에 쓴 글을 고쳐서 이제 세상에 내보낸다.
물론, 지금 이 산중에는 아줌마가 오지 않는다.^^ 처음 서귀포에 와서 집 청소라도 도와줄 아줌마를 YWCA에서 구했는데, 차 가진 아줌마가 없었다. 대신 로봇청소기와 건조기가 하고 있다. 글도 고치고, 집안일도 모두 남편과 둘이서 해야 한다. 늙어도 할 일 많아서 좋네.
수필단지라도 하나 마련해둘까 보다. 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