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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외에는 강제로 마스크를 안 써도 된 지 6개월이 지났다. 이제 아예 마스크를 완전히 벗어던진 이들도 많은데, 나는 아직 집 바깥에서는 주로 마스크를 쓴다.
지난 2년간 KF94만 썼다. 학생들을 매일 마주하기에 실내외에서 반드시 94를 고집했다. 여름날 걸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마스크 안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을 때만 잠시 벗고 심호흡하고, 사람이 보이면 그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 얼른 제대로 착용하고 코에 딱 붙였다. 면역력이 강한 편 아닌데 코로나에 한 번도 안 걸린 것은 아마도 94와 잦은 손 씻기 덕일 것이다.
아직도 마스크를 선뜻 벗지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 분석해 본다.
얼마 전 서울 9호선 지하철 급행을 탔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은 지옥철이라는 말을 연상할 만큼 빼곡히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때 나는 마스크를 벗고 있었는데, 지하철 문이 닫히자 깜짝 놀랐다. 갖가지 냄새가 코를 찔러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라 얼른 마스크를 꺼내 다시 썼다.
나이를 먹으니 몸이 더 예민해졌다. 미각도 코도 사람과 사물을 보는 느낌도 날카로워져 있지만 가능한 한 내색하지 않으려 한다. 여름이 되면서 바깥 음식이 조금만 이상해도 대번에 알아채고 먹지 못할 때도 종종 있고, 고기의 맛과 냄새는 더 진해졌다. 식당에서 내가 항의해도 만든 사람이 갸우뚱거릴 정도이지만, 나는 알아졌다. 그래서 거슬리는 냄새가 있을 때는 나만 그렇다고 여기며, 슬그머니 마스크를 다시 집어든다.
속초에 가족여행 갔을 때, 아직도 꼭꼭 마스크부터 챙기는 나를 보고 웃으며 뉴욕에 사는 여동생이 말했다.
“미국에서는 몇만 명이 모인 경기장에서도 이제 아무도 마스크 안 써.”
그럼 나도 그럴까? 하고 거기서부터 신나게 벗고 다녔었다.
아뿔싸. 마침 미세먼지가 심한 때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던 나는 곧 기침하기 시작했다. 동네 병원에 다니다 하도 낫지 않아서 호흡기 전문병원에 갔고, 대학병원에 가야 하나 할 때쯤 겨우 밤기침이 멎었다. 알레르기에서 오는 후비루 기침이라고 했다. 아니, 왜 평생 괜찮던 알레르기 질환이 발병했단 말인가. 알레르기엔 답이 없었다. 이불 소독, 베개 교환, 공기청정기 사용 등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그 후로 한라산이 또렷이 보이지 않을 때는 바깥에서도 마스크를 쓴다.
지금도 학생들과 수업할 때는 94 마스크를 꼭 쓴다. 아이들은 이미 다 벗어던졌지만, 나라도 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내가 안이나 밖에서 완전히 마스크를 벗어던질 때가 언제쯤 일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이건 불안 탓 아닐까? 사람에 대한 불신까지는 아니라도, 마스크를 씀으로써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이미 편해진 것이다. 너랑 나랑 소통은 하더라도, 얇은 막 하나는 둘 정도의 사이로 만나자는 의미이다.
이제 가족들 앞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나와 타자의 경계는 마스크였단 말이지. 내 정원에서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공기를 누리듯이 바깥에서도 그렇게 살 수 있는 날은 곧 올 것이다. 내가 덜 불안해지면 그렇게 될 것이다.
글에 쓸 무료 이미지를 뒤적이다 대문 이미지를 찾았다. 문득 오래전에 본 인상적인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무려 백 년 전 그림인데, 어쩌면 지금 우리를 예상이나 한 듯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