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4월이 되자 남편은 날 슬쩍 떠본다.
“이제 뚜껑 열고 함 타보자.”
“싫어. 먼지 들어와.”
대번에 거절했다.
미니쿠퍼 컨버터블 S의 소프트탑을 5년 열지 않고 탔다. 가끔 남편이 회유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난 뚜껑 열려고 산 거 아니고, 그냥 소탑이 디자인적으로 탁월해 보여서.”
그래도 남편은 간혹 불평한다.
“물건은 써야 안 상하는데, 생전 뚜껑 안 열어 보면?”
제주도는 바람 많지, 바람 불면 흙먼지 폴폴 날리지. 아서라. 그 먼지와 벌레 차 안에 다 들어온다 생각하면 나는 1도 열고 싶지 않아 꿋꿋이 버텼다.
오래전부터 미니 컨버터블은 내 로망이었다. 색도 그린으로 정해놓고, 중고차 사이트나 보배드림에 가서 미니컨버의 그린을 찾아보고 맘에 드는 차는 사진 다운받아 자주 보곤 했다. 서울 살 때는 지하철 타고 다녀도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한 십 년 운전도 하지 않았다.
서귀포로 이사 오니 반드시 차가 필요해졌다. 처음엔 운전이 자신 없어 마티즈 중고를 사서 한 2년 운전 연습한 후에, 마침내 남편이 이 차를 사주었다. 꿈을 이룬 셈이다. 2018년 3월 19일에 차가 내게 왔다.
내 차는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British Racing Green)인데, 이 색은 최근에 색이 좀 더 밝아졌지만, 내 차 색이 더 좋다. 에메랄드 보석색 같기도 하고, 이끼 색 같기도 하다. 나는 이끼 색 잉크를 넣어 만년필을 쓰기도 할 만큼 이 색을 좋아한다.
이 차는 3세대이다. 터치스크린이 아니라 좀 아쉽기는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다이얼식으로 돌리는 버튼도 익숙해져 나름 잘 쓰고 있다. 그 스크린을 빙 둘러싸고 있는 동그란 불은 미니의 꽃이다. 나는 무지개색으로 바뀌게 설정해 놓고 탄다. 이건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HUD는 운전석에 앉으면 핸들 위쪽 앞 유리창 쪽으로 올라오는 디스플레이인데, 자체 네비를 켜면 거기서 길안내를 해주기도 하고, 속도를 나타낸다. 센스 있고 유용한 아이템인데, 자체 네비를 잘 안 써서 큰 도움은 받지 않는다.
문은 두 개다. 물론 문 두 개는 제약이 많다. 딱 나 혼자나 아니면 두 사람이 가장 쾌적하다. 예전의 미니는 승차감이 안 좋았던 모양인데, 내 차는 시트가 적당히 단단하고, 적당히 부드러워 아주 편하다. 하지만 뒷좌석에 사람이 타려면 좀 덩치가 작든지, 조수석 자리와 공간을 타협해야 한다. 세 사람 정도도 괜찮다. 네 번째 승차자가 아이가 아니라면 좀 심란하다. 아직 그렇게 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가족용이라면 세컨드카라야 한다.
컨버터블 차는 첫차라 사실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커다란 트럭이 지나가면 우르르 그 소음이 전해질 정도였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천 쪼가리로 덮었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도 하만 카돈 스피커와 유튜브 프리미엄이 있어 나같이 소음 싫어하는 사람도 늘 음악을 들으며 쾌적한 차 안 생활을 하고 있다.
핸들은 휙휙 돌아가는 그런 타입은 아니다. 좀 묵직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그런가.
“손맛이 있다.”
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실 나는 렌터카 이외에는 그런 핸들의 차를 타본 적이 없어 내 차가 딱 적당하다.
타이어는 205 / 45 R17을 쓰는데 원래 타이어는 2년, 2만 km에 갈았다.
“레이싱할 거 아니면 이 타이어로.”
해서 회사 안 들어가고, 그냥 동네 타이어프로에서 사서 겨울 타이어랑 교대로 쓰고 있다. 제주도는 윈터 타이어가 필수이다. 더구나 사고 많은 516도로 자주 넘어 다니는 사람에게는 안전을 위한 필수품이다.
한 차를 5년 이상 타니, 오래 신은 신발처럼 차가 ‘몸에 붙는다’. 슬쩍 겉모습을 확인한 후 운전석에 앉으면 모든 장치들이 익숙해서 편안하다. 애인 아닌 남편 같다.
미니의 앞모습이 예쁘다고들 하는데, 나는 뒷모습이 더 이쁘다. 남편이 내 차를 몰고 떠날 때, 그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본 적이 있다. 마치 잘난 남의 차처럼 다시 반했다.
하지만, 미니 유저로서 강점은 외관보다 성능에 있다. 이 차는 쓸수록 더 편해지고, 잘 달린다. 시트는 적당히 단단해서 맞춤하게 편하고, 코너링은 부드럽고, 저속은 유연하고 고속은 잘 치고 빠진다. 서로 눈빛만 봐도 뜻을 이해하고 따라주는 사람 같다. 사실 고속으로 달릴 때 제맛이 나지만, 너무 잘 달리고, 코너링에도 강해서 겁날 때는 슬그머니 속도를 줄인다.
이차 모델은 1998cc이고, 출력 192hp, 공식 연비가 11.6(도심 10, 고속 13)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내 차는 여름 도심 7~8, 겨울 10 정도이다. 고속으로 달릴 수 있는 구간이 없는 데다 집과 일터가 5km 정도라 어쩔 수 없이 연비가 저 정도이다. 만 5년에 44,000km. 작년에 차계부를 정리하니, 한눈에 내 생활이 보인다.
도도하게 ‘뚜껑 안 연다’고 버텼는데,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쓰라고 있는 물건 안 쓰는 것도 미련한 짓 아닌가. 이제 먼지 하나에도 벌벌 떨지 않을 만큼 간이 커졌으니 나도 탑을 좀 열고 타볼까.
“올가을부터 뚜따 해보려고요.”
남편에게 말하니 엄청 좋아한다.
물론 오픈카의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받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직도 소심하지만, 한적한 제주의 바닷길이나 516 도로를 타고 제주 갈 때는 탑을 활짝 열고 즐겨 보려 한다.
지난 5년 동안 사고 난 적도 없고, 접촉 사고도 없었다. 주유소 주유원의 잘못인 듯 주유구 부근의 콕 찍힌 한 방만이 유일한 흠집이다. 큰 고장도 없었고, 고질적인 병도 없고, 사고도 없었다. 이만큼 큰 말썽 안 피고, 안이나 밖이나 만족감을 주는 차는 드물다. 그래서 나중에 고장 자주 나고 돈 많이 들면 그때 떠날 걸 고려해 볼 것이다. 그날까지 Fun dri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