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스페인어 배우니?”
질문을 받으면, 일단 “내년 초에 마드리드 여행 가려고.” 대답하지만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여행 외국어야 회화책만 달달 외워도 되고, 현지 호텔에서야 영어가 통할 것이다.
나는 늘 어떤 언어든 하나는 돌아가며 공부하고 있다. 취미이기도 하고, 일상에서의 도피이기도 하다. 언어를 공부하는 시간의 집중이 좋은 것이다. 아무 근심 없이 한 가지에 몰입하는 그 시간이. 오늘도 11시에 온라인 수업이 있는데, 일찍 일어나 준비 다 마쳐 놓고 여가 시간에 글 쓰고 있다.
그래. 처음엔 여행 계획이 잡히면서, 올해 3월 스페인어 글자라도 알아야 싶어서 알파벳부터 익히기 시작했다. 우연히 제주에 사는 원어민을 알게 되어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스페인어 공부를 했다.
한두 달이 지나면서 어려움에 봉착했다. 아무 사전 지식 없이 원어민과 수업하니, 문장을 만들어서 이야기해야 하는 게 무진장 어려웠다. 단어라곤 교재에 나온 몇 단어뿐, 문법도 조금 아는 주제에 작문은 언감생심. 수업 전에 관련 질문과 답을 만들어 달달 외우기도 했지만, 어렵기만 할 뿐이었다. 또 영어로 소통은 한다지만, 문법은 스스로 공부해서 깨쳐야 하는 게 힘들었다. 동사 시제의 차이점도 모르겠고, 갈수록 미궁에 빠졌다.
아하, 공부 방법이 틀렸구나 싶었다. 선생님께 몇 달만 쉬다가 다시 만나자. 아직은 내가 프리 토킹할 단계가 아니더라. 하고 이해를 구했다.
그리고 단어와 문법 공부를 한 달 전부터 집중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강습하는 한 선생님을 만났고, 그는 책 두 권을 소개했다.
이 책은 코스북 1,2권을 샀다. 1권은 매주 한 챕터씩 내가 미리 공부해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을 질문한다. 아직은 초반이라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단어가 많이 나온다.
결국 외국어는 단어 공부다. 단어를 많이 알면 알수록 문법이 좀 서툴러도 의사소통이 된다.
“선생님, 단어가 안 외워져요. 어떻게 잘 외우는 방법이 없을까요?”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지름길 없어. 외우고, 잊고, 사전 한 열 번만 찾으면 된다.”
나야 잘 외우 지를 못해서 이 방법밖에 모르지만, 탁월하게 외우기를 잘하는 녀석들도 보았다.
방학이면 학원에서 단어 대회를 해서 포상했다. 남자아이들은 특히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 있을 경우,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지금은 청년이 된 한 아이는 영어만 아주 좋아하고 잘하는 꼬마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그 아이가 공책 8쪽쯤 되는 단어 몇백 개를 숨도 쉬지 않는 듯 줄줄 발표하는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본 적이 있다.
나는 어느 언어나 단어장을 만들긴 하지만, 그걸 들여다보면서 외우진 않는다. 정리해 두고 기억 안 나면 사전 찾는다. 학생들에게는, “이그, 그거 나올 때마다 찾을 바에야 외우겠다.” 하고 큰소리치지만, 정작 내 낡은 머리로는 단어가 잘 외워지지 않는다. 보고, 모르면 또 찾고, 또 보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익혀야 했다. 그래도 한 달 동안 열심히 들여다보니 이제 꽤 단어를 알게 되었다.
‘나, 이러다가 나중에 스페인어책도 보는 거 아님?’
하는 꿈에 부풀기도 한다.
이 교재가 물건이다. 더 좋은 문법 연습교재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아는 한에선 최고 좋은 문법 연습장이다. 나는 초반을 건너뛰고 48장 동사의 시제 편부터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문법 설명을 해주고 나면, 나는 한 주에 한 세 장 정도 풀어서 수업 전 날 사진을 찍어서 제출한다. 그러면 수업 시간에 틀린 문제의 답을 알려주며 왜 틀렸는지를 가르쳐준다.
시작은 했는데 이거 큰 난관이다. 무엇보다 역시 단어를 모르니, 문법 설명도 해석하려면 일일이 단어를 다 찾아야 한다. 한 페이지에 단어만 수십 개를 찾기도 한다. 해석은 크게 어렵진 않았다. 스페인어가 영어와 비슷한 단어도 많았고, 불어 단어와 어근이 비슷하기도 해서 뜻이 짐작이 갔다. 비슷하면서 다른 어휘들이 재미있기도 했다.
낑낑대며 10쪽 이상을 공부해 나가니 이제 좀은 덜 단어를 찾게 된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과거 편이 시작되며 다시 고난의 시작이다.
동사변화를 찾을 때는 이 사이트가 편했다. 늘 열어놓고 참고한다.
chatGPT도 같이 잘 이용한다. 두 단어의 뉘앙스 차이, 혹은 문장에서 한 어휘의 문법적 쓰임을 모를 때는 이 친구가 잘 알려주어 함께 이용한다. 간혹 질문을 잘 못 하면, 엉뚱한 소리도 해서 웃기도 한다.
아마도 이번 여름은 스페인어 동사 시제와 땀깨나 흘리며 보내게 될 것이다. 그래도 조목조목 하나씩 공부해 가니 문법도 단어도 조금씩 늘고 있다.
어젯밤에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내가 스페인어 수업 한 시간을 준비하려면 몇 시간쯤 공부할까?”
“글쎄, 한 열 배는 하겠지?”
“응, 열 시간은 넘게 해.”
그 당장 쓰잘데기 없는 스페인어 공부 한다고 앉아 있는 마누라 꼴 보기 싫어하지 않는 남편이 고맙다.
“당신은 늘 언어 공부하니 나중에 치매는 안 걸릴 거야.”
이렇게 말해준다.
그나저나 시간을 여기에 쓰니, 정원에 풀 뽑을 시간이 없다. 저 풀들을 어쩔꼬. 하루가 24시간이 넘으면 좋겠다. 밤도 더 백야처럼 길면 좋겠고.
사진 : Pixabay로부터 입수된Ulises Romero님의 이미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