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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May 30. 2023

고베의 “엘리 마이 러브”

나와 고베와 재즈, 그리고 엘리

5월의 가족 여행에서도 나는 고베에 갔다. 고베는 지난 20년간 일본에서 가장 자주 갔던 곳이다. 낯선 곳은 여행을 꿈꾸게 만들지만, 짙은 인연이 있던 곳은 가끔 돌아가고 싶어 진다.



왜 고베(神戸)인가?


누군가 나를 ‘30cm쯤 떨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했다. 그 말을 거부하지 못했다. 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좋아하지만, 두려워한다.

나의 팔 길이 안에 들어 있는 가족과 친구를 제하면, 다음으로 닿을 수 있는 곳에 계신 분이 고베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아버지의 친구였고, 내가 태어났을 때 곁에 계셨던 분이다. 나는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너,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거니? 니가 기억한다면 좋을 텐데. 니가 세 살 때 지금은 빠찡코 자리로 변한 저 찻집에서 네 엄마가 너를 안고 기다렸었지. 한국으로 가려고 고베시에 왔는데, 배가 안 떠서 세 번이나 오사카와 고베를 왔다 갔다 했어.”

모토마치를 지나며 아저씨는 그 말씀을 하셨다.

아저씨의 기억이 틀렸다. 나는 그때 세 살이 아니라 삼 개월 때라 애당초 기억 할 리가 없을 때지만, 나는 웃음으로 여든네 살 되신 아저씨의 기억을 존중해 드렸다.


고베에 처음 갔을 때, 그 도시는 내가 오래 살아온 부산을 연상시켜 흥미로웠다. 산과 바다를 함께 가진 도시. 정갈한 도시. 많은 고층 건물이 재해 후에 지어졌지만, 1868년 개항 후 서일본 최초의 국제 항구로서 당시 모습을 아울러 간직한 매력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고베에는 재즈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고베는 세련되고, 이국적인 도시이다.



고베 재즈 스트리트 (https://www.kobejazzstreet.gr.jp/)


고베에서는 매년 가을 재즈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는 100주년 기념으로 10월 6일에서 8일까지 열린다. 아저씨가 살아계실 적엔 이 시기를 맞춰 고베에 가서 아저씨도 뵙고, 페스티벌에도 참여했다. (올해도 신나게 가주려고 일정 체크 했더니, 학생들 시험이 그다음 주여서 포기했다. 홀짝. 속상한 눈물 한 방울.)

나는 이렇게 홀로 어슬렁어슬렁 각각의 재즈 클럽을 돌아다니며 연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나라에서 재즈가 애호가들의 음악인 반면, 고베에서 재즈는 나이 제한이 없었다. 연주인과 관람자들의 나이가 고령이고, 재즈는 누구나 연주하고 즐기는 음악이었다. 장바구니 든 아줌마도 왔고, 아이를 데리고 온 주부도 있었고, 70대 노인들도 많았다.


고베의 재즈클럽은 우리의 재즈클럽과 많이 달랐다. 문화에도 나이가 필요한지 모른다. 시간이 더 흐르면 우리의 재즈클럽도 누구나 마음 가볍게 찾아가 즐길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많은 음악들이 저장된 음악보다 직접 연주를 따라갈 수 없지만, 재즈야말로 바로 제 자리에서 들어야 핏속을 흐르는 음악이 아닐까. 같은 공기를 호흡하고, 눈을 감으면 연주자와 나만 있는 것 같은 오소소한 전율을 주는 게 재즈의 특성이다.


연주에 있어서 긴장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상대방을 일순간 도취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 긴장이 끊기지 않고, up and down 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자칫하다가는 틈이 생긴다. 거기에 실력 차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재즈야말로 잘하는 사람의 연주를 들어야 한다.


재즈 클럽 Sone  (http://kobe-sone.com/)

가장 유명한 클럽이 Sone이다. 우리나라 클럽으로 보면 보통 규모 정도이지만, 고베에서는 큰 클럽이다. 라이브가 짜임 있다. 고베에 가면 이곳에서 재즈를 들어보기를 권한다.



Ellie’s (https://www.ellies-kobe.com/)

     

2005년에 처음 엘리스 바에 갔다. 외국인 거류지인 기타노 이진칸(北野異人館街) 분위기를 즐기며 오가다, 가게 앞에서 open stage란 팻말을 보았다. 이것도 나름 재미있겠다 싶어 정통 재즈클럽은 아닌 엘리스에 들어섰다.


엘리는 그곳의 ‘마마상’이며, 싱어이다.

“나도 한국인이야. 그런데, 한국말은 못 해. 서울에 한 번 가본 적이 있고.”

바에 앉아 걸걸한 목소리에 쾌활한 노랑머리 마마상과 유쾌하게 시간을 보냈다.

엘리가 묻는다.

“다음에는 내가 노래 부를 건데, 신청할 노래 있니?”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어울릴 듯한 Summertime을 신청했다.

역시 엘리는 그 노래를 썩 분위기 있게 잘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찍었고, 엘리는 사진을 부쳐 달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2005년의 엘리



그 후, 고베에 갈 때마다 엘리스 바에 가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매 번 같은 노래, Summertime을 청한다. 그 노래를 잘하기도 하지만, 세월에 따른 그녀의 변화를 감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남편은 이번에 레이찰스의 노래 ‘엘리 마이 러브 Ellie My Love’를 신청했다. 엘리는 자신의 이름임을 기뻐하며, 그윽하게 우리를 바라보며 노래를 들려주었다.  


엘리는 나와 함께 늙어간다. 어딘가 세상 한쪽에 나처럼 늙어가지만, 노래 잘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 그래서 그녀의 노래를 들으러 먼 곳에서 찾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엘리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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