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워크맨이 1979년에 출시되었다. 나는 80년대 초반부터 워크맨과 이어폰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회색 메탈의 간지 나는 워크맨 WM-2 (1981)를 늘 끼고 살았다. 워크맨은 요즘 아이폰의 인기를 넘을 정도였다. 언제 어디서나 혼자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또 소니 이어폰은 당시 한국 음향 기기의 품질을 뛰어넘어 모두가 탐내는 제품이었다.
결혼하고 애들 키울 때는 한 십 년 음악을 듣지 못하다, 90년대부터 다시 음악을 항상 곁에 두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애용했다. 일본에 갈 때면, 소니 매장에 가서 나에게 맞는 이어폰을 구입했다.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사용하던 초기, 그 외로움을 기억한다. 지하철이 소리를 내면서 들어온다. 도착을 알리는 높은 소음이 희미하게 감지된다. 나는 내 속에 들어앉아 차 앞으로 다가가는 반사행동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소음이 사라진 세계는 나와 음악만이 남아, 사람 속에서도 혼자 섬에 남겨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서울에서는 소음이 힘들어, 거리에서 안 쓸 수가 없었다.
몇십 년 이어폰을 늘 쓰고 다녔더니, 고주파가 망가졌다. 슬슬 귀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도, 남편이 일찍 잠들면 생일선물로 받은 Bose 헤드폰을 TV와 페어링 시켜놓고, 신나게 드라마를 즐기기도 했다.
작년 봄 아침에 잠 깨니 천장이 빙글빙글 심하게 돌아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내가 큰 병에 걸렸구나.’
어지럽고 토하고 싶은 증세를 겨우 참아가며 남편 부축을 받아 병원에 갔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고 검사한 끝에 메니에르병(Meniere's disease)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재미있게도, 제주 시내의 젊은 의사들은 확진 못 하는 병을 서귀포에 있는 60년대 스타일 병원의 괴짜 의사 선생님이 알아냈다.
약을 먹고 어지럼증은 없지만, 조금만 시끄러운 곳에 가도, 귀가 먹먹해지며 이명이 심해졌다. 실은 이 병은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다. 소리를 지나치게 차단하고, 헤드폰을 너무 오래 꼈더니 발병한 것이라 본다. 게다가 나이 들어 면역이 떨어지며 이런 증세가 생겼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진료를 볼 때마다 세 가지를 복창시켰다.
“뭐 세 가지를 명심하라고 했죠?”
“첫째, 짜게 먹지 말 것.
둘째, 생야채를 듬뿍 하루에 두 접시 이상 먹을 것.
셋째, 마음 느긋하게 살 것!”
1번과 2번은 가능한데, 3번이 문제였다.
선생님의 치료 덕에 메니에르병은 한 번으로 끝났다. 그 후 서울대병원까지 가서 검사했는데, 메니에르병은 아니라고 했다.
이제 나는 이어폰도, 헤드폰도 끊었다. 그러나 한 번 망가지기 시작한 귀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빠졌다. 마음 느긋하게 살지 못해서인가.
두어 달 전부터 다시 이명이 심해졌다. 보통은 자기 직전에만 좀 의식을 했는데, 이제 수시로 커져 짜증이 날 정도였다. 불편함을 견디다 다시 귀 전문병원을 찾았다.
“귀 주변의 혈액순환을 돕는 약을 복용하고, 하루 6시간씩 소리 치료요법을 시행하세요.”
하루 6시간씩 소리파일을 듣는다? 삶의 배경음악도 아니고, 조용히 앉아서?
내 생활에선 불가능한 치료법이어서, 포기하고 약만 먹는다. 약을 먹으면 그래도 좀 낫다.
고주파가 망가져서 이명이 온다고 했다. 원인은 모르고, 결과만 있다.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젊은 그대들이여!
귀가 생생할 때, 이어폰 볼륨도 줄이고, 지나친 탐닉도 하지 말기를.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도 심각하게 고민해 보기를.
경험에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