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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Aug 09. 2023

밀수의 OST, 나를 울리다

 

맹세코 지나간 날을 돌아보기 좋아하지 않는다.

70년대 부산 산동네의 집들, 다섯 남매 두 살 터울로 낳아 생활에 지쳐 바락바락 고함치던 우리 엄마, 내 아이를 들쳐업던 유치 찬란한 빨간 포대기, 가족 모르게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울던 메마른 아줌마인 나. 시리고 구질구질한, 어리고 젊은 날들이 무에라고 돌이키고 그립고 할 건가. 그저 한바탕 춤사위를 끝낸 후, 적막 속에 들어앉은 노년이 감사하여 이 편안함을 즐길 뿐이다. 뭐랄까. 인생에서 할 만큼 했다?      


“우리가 얼마 만에 영화관에 가지?”

“글쎄, 4년쯤 되지 않았나?”

“이 영화 우리 어릴 적 노래들이 배경이라서. 그리고 박정민 배우 좋아하잖아.”

“팝콘도 먹자. 음료는 자몽주스로.”

군것질 즐기지 않는 그가 오래간만이라 그런지 팝콘을 맛있게 먹는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미국 영화보다 재밌어졌다. 저 영화의 배경이 된 무렵에는 모두 미국 영화만 환호했다. 한국 영화는 히트작만 보러 갔는데, 그래도 상당 부분이 유치했다. 하지만 이제는, 넷플릭스에서도 한국 것만 본다. 더 흥미진진하고, 짜임새도 있다. 한국인에게는 예술적 기질이 있다. 그리고 최근 50년 사이에 젊은이들의 체격이 몹시 훌륭해졌다. 원래 깔(물건의 빛깔이나 맵시) 맞춤에 강해 옷도 잘 입는다. 아마도 한동안 이런 특성이 더 빛날 것이다. 이 강점이 모여 새로운 역사가 쌓일 것이고. 우리 7080 세대들은 그런 발전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밀수는 우리 시대에 흔한 일이었다. 7, 80년대 코끼리표 밥통이 얼마나 기깔나게 폼 났는지. 엄마들이 얼마나 오매불망 원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어느 집이나 일제 물건을 뽐냈던 시절이었다. 영화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그 모든 물건이 정식 수입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부산의 경우 외항선원들이 오가며 많이 들여왔고, 아버지도 한 때 배를 탔고, 그쪽 일을 하셨기에 일제 물건들이 흔했다. 우리 집에는 커다란 스피커 두 개가 딸린 일본제 전축이 있었다. 도시바로 기억하는데, 우리 남매들의 청소년 시절 벗이었다.     




눈길을 끌었던 캐릭터 1,2,3     


1. 가장 돋보였던 배우 고민시 (옥분역)  


        


아마 이 배우가 없었다면, 영화가 좀 심심했을 것이다. 그 번쩍거리는 하얀 한복 천은 어디서 구한 것일까. 나는 기억한다. 저 천을. 7, 80년대 다방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를 보고 웃는다. 거기다 갈매기 모양 눈썹이라니. 당시 젊음을 보낸 나도 저런 한복은 입지 않고, 눈썹은 하지 않았다. 딱 다방 마담 모습이다. 찰떡 배역을 잘 재현해 낸 그녀를 앞으로 지켜본다.  

    

2. 변신의 귀재, 박정민! (장도리역)          



요즘 한예종 출신 배우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미모보다 개성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다. 그도 한예종 출신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며칠 전 TV를 돌리다 우연히 그를 보고, ‘곽준빈의 세계 기사식당’까지 다 보았다.

이번 역할은 의외였다. 덩치까지 키워, 평범한 동네 청년에서 악당으로 변신한 모습이 볼만하다. 연기력의 폭이 넓은 배우이다. 다만, 이제는 찌질이가 아니라, 더 멋진 모습으로 나오는 영화도 보고 싶다.

    

3. 눈빛이 탁월한 조인성 (권 상사역)     



조인성은 잘 생겼지만, 발성이 좀 떨어지는 배우로 여겼었다. 큰 키가 어정쩡했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연기를 잘하게 되었을까? 어느 순간 빛을 발하는 눈과 표정의 변화가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나는 눈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 좋더라.     


반면에, 김혜수는 의아하다. 그녀는 이제 코 찡긋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주름만 더 드러나서 보기가 좀 민망했다. 이상하게 이 영화에선 본인이 인물 분석을 그렇게 했는지 몰라도 목소리가 달뜨고 경박해서 안정감이 없었다. 거슬리기조차 했다.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한 기자가 말했다. 음악을 먼저 짜 놓고, 시나리오를 썼나 싶었다고. 딱 내 마음이 그랬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김추자의 ‘무인도’가 나오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살았던 시간들. 스쳐 지나가 버린 물건들. 사람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져 영화에서 보여주어야 떠오르는 4, 50년 전 풍경들. 그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 살아서 지금의 나를 이루었구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어도 그게 끝이 아니었구나, 싶은 벅찬 눈물이었다. 불이 켜진 영화관에서 서둘러 눈물을 훔쳤다.      


그가 나를 힐끗 보고 말한다.

“나도 어느 시점에서 울컥했어.”     


영화는 우리에게 성공했다. 고맙고 수고했어요.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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