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항동 푸른수목원에서 배롱나무를 처음 보았다. 매일 수목원에 산책 다니면서, 꽃과 나무를 익히던 시절이었다. 어느 저녁 해거름에 그 꽃을 처음 보았다. 어두워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치렁치렁한 꽃으로 장식된 그 나무는 섬뜩할 만큼 묘한 아름다움이 있어, 한동안 꼼짝 못 하고 꽃과 나무와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때 나무에 달린 팻말에서 이름을 보았다.
‘배롱나무라니. 이름도 정겹구나.’
그 후로 배롱나무에 대한 사랑을 품게 되었다.
제주에서는 배롱나무를 무덤 주변에 심는다. 배롱나무가 피는 철에 벌초하러 가는 사람들이 풀이 무성한 숲에서 무덤을 쉽게 찾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집안에는 심지 않았다. 그 꽃의 촌스럽도록 진한 꽃 색이 해가 지면 귀기스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던 것은 그래서인가. 그래도 나는 육지 것이라 집 뜰에 심었다.
배롱나무는 추위에 약해서 서울에서는 겨울이면 모두 나무 몸통에 두꺼운 방한재를 둘러야 하지만, 서귀포는 따뜻해서 그냥 맨몸으로도 겨울을 났다. 추운 곳이 꽃 색이 더 진하고, 아름다웠다. 화살나무의 붉은색도 추운 곳에서 더 강렬했다.
서울에서 이사 오면서, 우리는 차 뒷자리에 집의 나뭇가지들을 가져왔다. 배롱나무, 박태기, 앵두나무들. 그 가지들의 삽목에 성공하여, 서귀포에서 나무로 키운 게 몇 종 된다. 그 후 집을 짓고 조경하면서, 다시 배롱나무와 다이너마이트 배롱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이제 그 나무들이 모두 자리 잡았다. 요즘 2층에서 바라보면, 죽 줄지어 만개한 배롱나무꽃들이 기가 막힌 풍경을 보여준다. 오래가는 꽃이라 오래 즐겁다.
놀랍게도 다이너마이트 배롱나무는 여기저기 솟아났다. 한 나무가 자리 잡는 동안, 그 곁에 새로운 싹들이 삐죽이 올라와서 옮겨 심었다. 작년에 다시 새 나무가 올라와 올해 또 그 곁에 옮겨 심었다. 몇 년 지나면 그쪽은 불꽃색으로 물들 것이다.
식물은 이상하다. 어느 날 시선이 머물고, 그의 이름을 알게 되고, 마음을 열게 되면 도처에 그 모습이 보인다. 알게 되면 보이고, 찾게 된다. 처음 본 게 초저녁 어스름이어서 그런지, 배롱나무꽃은 신들린 듯 교교한 달빛 같은 아름다움이지만, 다이너마이트 배롱나무꽃은 햇빛 속에서 타는 불꽃같다.
나무는 기다려야 한다. 자리를 옮기면 이사한 곳에 적응하고, 자라서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기까지. 또 그 꽃이 풍성해질 때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줘야 한다. 사람의 급한 성정을 누르고, 느긋함을 배우기엔 맞춤한 배움 거리이다.
맺음말)
며칠 전 뉴욕 한 달 살기를 결정했다. 9월 12일 집을 출발하여 10월 17일 돌아온다. 배롱나무의 계절에 나의 생활이 바뀌고 있다. 침착하게 준비하면서 변화를 기다린다. 그래도 몇 년만의 뉴욕행에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