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이 시대의 사랑 3부 (2)

by 꼬낀느

황혼


저무는 어디에서 기다리리.

알 수 없는 뿌리로 떠돌다

病의 끝에서 만나는

그리운 그리운 肉身들

지친 홀로의 이름들이

저세상 바람 소리 빗소리

독한 노래로 젖어들 때

이 무게를 지워다오

이 무게를 지워다오

몸부림치는 저승의 달빛


사물이 저 혼자서 저문다

세상 밖으로 그대는

그대의 뿌리를 내린다.

우리는 세상 안에 뿌리를 내려야지. 결혼하고 자식 낳고 집도 사고 황혼 무렵엔 친구를 만나 술도 한잔해야지. 그래야 살지.

하지만 시인은 스물서너 살에 이렇게 <독한> 삶의 무게를 느끼고, <지워다오>를 거듭하고, <病의 끝>에 그리운 사람들을 만난다.


<세상 밖으로 그대는 / 그대의 뿌리를 내린다.>


짧지만 울림이 있는 구절이다. 여기서 그대는 사랑의 대상은 아닌 듯하다. <그리운 그리운 肉身들> <지친 홀로의 이름들>, 너와 나 바로 우리일 것이다.




사랑하는 손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안식

사랑한다고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거기서 알 수 없는 비가 내리지

내려서 적셔 주는 가여운 평화


무슨 사랑이 사랑하는 너의 손을 잡을 때, 열 손가락에 쓸쓸함이 걸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비>, 예상하지 못했던 비의 맛은 쓸쓸하면서 따뜻하기에 인간에 대한 가여운 안식과 사랑하는 순간의 평화를 느낀 것인가.


김치수 선생님의 평 : 사랑은 대상과 함께 있는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은 전부로서의 사랑이 아니라 <가여운 안식> <가여운 평화>로서의 사랑이어서 열손가락에 의해서만 만나는 흡족하지 못한 것이다. 이 미흡한 사랑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존재의 쓸쓸함>이다.


아, 김치수 선생님.

나는 대학 시절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었다. 특강 나온 김현 선생님의 수업은 내용도 어렵고, 속도도 빨라 정신 바짝 차리고 필기하며 쫓아가기 바빴지만, 김치수 선생님은 늘 한결같은 태도로 수업하시며 참스승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지금도 선생님이 그립다.




잠들기 전에


잠들기 전에 하늘님

내 몸의 먼지를

淸天의 눈물로 씻어 주세요

오래된 어둠의 정액도 씻어 주시고

한밤내 그냥 처녀로 두어 주세요

아침이 되기 전에 하늘님

내 어둠의 목숨에도

한 차례 폭풍우를 주시어

돌아오는 아침 최초의 햇빛 속에

깨끗한 새순을 내밀었으면요

넝쿨넝쿨 이쁘게 뻗었으면요

70년대 80년대 초까지 ‘처녀 이데올로기’가 퍼렇게 살아 있었다. 내 아이들에게 처녀막 재생수술이란 게 있었다니 놀라 까무러친다.

당시라고 연애 안 하고, 남자랑 사랑도 안 했을까. 하지만 몇 년을 연애한 친구도 애인이랑 입도 한번 안 맞춘 것처럼 펄쩍 뛰며 시침 뚝 뗐던 시절이다. 결혼의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모두 순결한 처녀로 살아야 했다. 아니라도 그랬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기도한다.

내 몸의 먼지와 함께 오랜 <어둠의 정액도 씻어> <내 어둠의 목숨>이 아침이면 새로워지기를. 순수, 청순해지기를(그 시대 우리의 말이다).


이십 대의 최승자를 본다.

나는 젊은 그녀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찬란해서 두려운 최승자